독서

왕의 밥상으로 보는 조선 27명 왕들의 식습관

NeoTrois 2020. 2. 27. 20:00

2010년 조선일보 논피션대상 수장작인 함규진의 <왕의 밥상>(북이십일, 2010)이란 책이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등 수 많은 참고문헌에서 태조에서부터 순종까지 조선왕 27명의 밥상은 어땠는지 깊이있게 탐구했다.

 

저자 함규진은 「정약용 정치사상의 재조명」이라는 주제로 성균관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같은 대학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가 윤리적인 식사를 다룬『죽음의 밥상』을 번역하면서 조선 왕들의 식사가 지닌 정치적, 윤리적 함의를 조명하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왕의 밥상>에는 왕의 밥상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들이 수 없이 소개된다. 광해군이 날것을 즐겼다거나, 연산군은 사슴꼬리에 대한 식탐이 대단했다는 일화를 통해 저자는 왕의 식습관과 정치 스타일을 비교분석하면서 '고르게 먹으려고 노력한 왕이 아무래도 선정을 베풀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임금이 근신한다는 뜻으로 반찬의 가짓수나 식사 횟수를 줄이는 감선, 백성들이 오랜 가뭄과 홍수로 시달리는데, 고기반찬을 먹을 수 없다는 철선, 신하들의 당파 싸움을 다스리기 위해 아예 수라를 들지 않는, 이른바 왕의 단식투쟁이인 각선의 의미도 재조명했다.

 

조선 왕 중에서 감선이나 철선을 정치적으로 가장 잘 이용한 왕은 영조 대왕으로 재위 기간 중 무려 89차례나 감선하여 역대 왕 중 최고기록을 세웠다.

 

노회했던 영조는 왕이 반찬 가짓수를 줄이며 반성하고 있다고 선포하면, 그것을 알면서도 신하들이 음주 가무를 즐기지 못하고 신하들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정치역학을 누구보다도 잘 활용했다는 것이다.

 

애연가인 나에게는 담배를 극찬하며 자신의 병세를 진정시키는 데 효험이 있는 것은 오직 담배뿐이라고 말한 정조의 절절한 담배 사랑이 특히 인상적이다.

 

화기로 차가운 담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고, 연기의 진액이 폐를 윤택하게 하여 밤잠을 편안히 찰 수 있었다.

정치의 득과 실을 깊이 생각할 때 뒤엉켜서 산란한 마음을 맑은 거울을 비추듯 바로잡게 하는 것도 그 힘이며, 갑이냐 을이냐늘 교정하여 붓방아를 찧을 때에 생각을 짜내느라 고심하는 고뇌를 편안하게 누그러뜨리는 것도 그 힘이다.

-『홍재전서』, 함규진, <왕의 밥상>(북이십일, 2010) p.149에서 재인용

 

조선 왕 27명 중에서 가장 천재적이었던 왕, 위풍당당한 정복군주로서의 위엄을 가졌던 왕, 박학다식한 학식으로 신하들을 압도한 정조, 의학에도 정통했다는 정조의 담배 예찬론이 맞고 현대의학이 틀리기를 간절히 빈다.

 

조선 왕들은 음양오행으로 풀이되는 자연의 질서에 따르는 식사를 하며, 거대한 자연의 일부이기도 한 인간 사회의 정서와 역학 관계를 또한 따지면서 식사를 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조화를 달성한 왕들의 밥상이기에 또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수라상이었다.

 

물론 조선 왕들이 다 그랫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소수지만 자연과 백성과의 관계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했던 왕들은 정치도 잘했고 비교적 오래 살았다.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왕들은 단명하거나 병든 삶을 살았다. 세종마저도 지나친 육식과 공부로 비만했고, 말년에는 몸이 종합병동이었다고 한다.

 

먹거리나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 보다 높은 시대다. 조선 왕들의 밥상에 깃든 철학이나 사상은 바쁜 현대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각 왕들의 저자 나름의 정치적인 평가와 식재료에 대한 한의학적인 해석은 귀기울여 들을 만하다.

 

아울러 왕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싫어 했는지를 알고 나면, 조선왕 27명의 캐릭터가 보다 생동감있게 다가온다.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먹는)행동보다 더 선명한 것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