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마이클 샌덜의 '정의란 무엇인가', 한 시대의 그림자

NeoTrois 2019. 5. 13. 13:54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는 한 시대의 실체가 아닌 그림자입니다. 베스트셀러는 나무가 아닌 스쳐간 바람입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2010)도 이 요건에 꼭 맞는 그런 책입니다.

마이클 샌델은 인류사에서 정의를 이해하는 방식을 세가지로 압축해 소개합니다.

그 첫째는 제러미 벤담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자들의 주장,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곧 정의란 관념입니다. 샌델은 인간의 행복을 단일 통화로 계량화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며, 도량형처럼 행복을 측정하려는 시도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냅니다.

둘째는 이마누엘 칸트와 존 롤스의 정의론에 대한 공박합니다. 인간이 '무지의 장막'뒤에 설 수도 없을 뿐더러, 도덕적 자격을 배제한 채 정의를 논할 수도 없다고 샌델은 말합니다.

샌델에게 정의는 도덕적 자격을 갖춘 이에게 영광과 포상을 수여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저자가 지지하는 이 세번째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미덕이 곧 정의라는 텔로스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마이클 샌델은 무릇 정치라면 시민에게 좋은 삶을 가르치고 미덕을 칭송하며 연대와 소속감을 고양시키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다양성이 존중받는 다원화 시대에서 세계가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택'을 완벽하게 담보하지 못한다고 해서, 독립된 자아로서의 인간성을 포기하고 공동체의 이야기 속으로 숨는다는 것은 비겁한 일이 아닐까요?

공동체의 이야기 속에서 미덕을 기르는 것이 정치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샌델은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미덕을 기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저자의 문맥에서 선동적인 정치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저자의 주장에서 물상이 아닌 공허한 그림자의 메아리가 느껴지는 까닭입니다.

이와 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사고방식에 천착하다 보면, 공리주의자들처럼 인간을 수단화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더욱이 좋은 삶을 가르치는 것이 정치란 발상은 또다른 공리주의에 불과합니다.

이마누엘 칸트의 말처럼 "인간은, 그리고 일반적으로 모든 이성적 존재는, 이런 저런 의지에 따라 임의로 사용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삶에 인간이 동원되어서도, 미덕을 기르는 일에 인간이 이용되어서도 안되는 것이지요.

<정의란 무엇인가>가 번역 출간될 즈음, 우리 사회에는 공교롭게도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자들에 의해 '공정한 사회'가 화두로 생산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