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소설 '7년의 밤' B급 호러 영화를 본 기분

NeoTrois 2019. 3. 5. 07:52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2011)을 처음 읽었을 때 흡인력이 상당했습니다. <내 심장을 쏴라>(2009)로 1억원 고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저력이 돋보였던 소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여성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문장의 힘이 강력했습니다.

소설가 박범신은 정유정을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정유정이 보여주는 문학적 성실성, 역동적 서사, 통 큰 어필은 새로운 소설의 지평을 여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녀는 괴물 같은 '아마존'이다.

<7년의 밤>은 운명의 엉뚱함에 대해 말합니다. 장래가 촉망되던 야구선수 최현수의 트라우마와 예기치 않은 불운을 통해 인간의 운명을 다뤘습니다. 그것을 작가는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밤'이라고 했습니다.

세령호 댐의 관리원으로 내려가던 현수는 안개가 몰아치던 음산한 길에서 그 변화구에 정통으로 맞았는데요, 그가 '아이'를 치었던 것입니다.

현수는 하지 말았어야 할 음주운전을 했고, 사고 후 조치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은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뒤로 사건은 계속 꼬이며, 순식간에 7년의 밤을 이어갑니다.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다 보면, 작가가 던진 날카로운 변화구의 낙폭이 얼마나 큰지 체감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숨가쁘게 읽고 난 후에야 그 변화구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납니다. 인생이라는 것, 운명이라는 것, 그리고 독자들은 작가가 던진 변화구를 맞받아쳐야 함을 깨닫습니다.

현수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몰아치던 밤, 그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안개였을까, 사내의 부주의였을까, 아니면 운명의 장난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최현수는 고교시절 장래가 촉망되던 야구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프로에 입단 한 후로는 메이저리그에서 뛰지 못하고 2군 선수로 울분을 삭이다 은퇴했습니다.

그가 야구세계에서 활짝 피지 못한 것은 '용팔이' 팔 때문이었습니다. 승부가 갈리는 중요한 게임에서 현수의 왼팔은 그 때마다 마비되곤 했습니다.

그 때마다 동료들은 '용팔이'가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용팔이 팔은 현수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현수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에는 검은 바위선이 벌판 끝 지평선을 가로막고 있는 곳에 수수벌판이 있었죠.

벌판에 자라는 수수는 키가 크고 알이 굵은데, 석 달도 안 돼 검붉은 색으로 익고, 달이 뜨고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밤이면, 수수벌판은 핏빛 너울이 일렁이는 바다처럼 보였습니다.

그 수수벌판은 버석버석 마른 땅에서 안개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대기에서는 짠 냄새가 났다. 달이 뜨지 않는 어두운 밤이면 현수는 홀로 수수벌판 끝까지 걸어가 보곤 했다. 수수의 키가 2미터도 넘게 자라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달이 뜨지 않는 밤에는 수수벌판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을 현수는 가볍게 여겼다.

수수벌판 가운데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오래된 우물이 있었다. 안은 아주 깊었다. 허리를 걸치고 엎드려서 들여다봐도 안이 깜깜할 정도로. 현수는 그 우물에다 자신의 억압받은 욕망의 물건을 던져 넣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그 우물에 빠져 죽었다.

어쩌면 현수는 그의 아버지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조그만 주의깊었더라면.

세령호 댐의 관리원으로 내려간 현수는 자기 자동차에 치인 아이가 자기 아들과 같은 나이인 세령임을 알게 되면서 은퇴 후 종적을 감추었던 용팔이 팔은 다시 돌아옵니다.

현수가 범인이라고 직감한 세령의 아버지, 오영제는 법에 의거하기보다 동해보복(同害報復)을 욕망합니다.

동해보복을 하려는 자의 집요함과 운명의 장난에서 벗어나려는 자의 대결이 불꽃처럼 일렁이며 7년을 세월이 흘러갑니다.

<7년의 밤>은 소설 속에 소설이 등장합니다.

현수의 아들과 같은 방을 썼던 승환이 기록한 소설 '세령호'를 현수의 아들, 서원이 읽으면서 사건의 전모는 승환의 소설에 의해서 밝혀집니다.

독자들은 서원의 시선으로 그 소설을 같이 읽으며 두 남자의 대결과 운명에 대하여 잔인함을 느끼게 됩니다. 

작가는 현수의 입을 빌어 현수의 운명을 위해 다음과 같은 별론을 합니다.

"서원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상상하는 게 가장 즐거워. 그 아이 생일마다 승환 씨가 보내준 사진을 벽에 쭉 붙여놨거든. 보면 볼수록 신기해. 열다섯 살까지 소년이다가 열여섯 살에서 청년으로 훌쩍 뛰어오르는 거. 내내 아이 곁에 있었다면 난 아마 그 마술 같은 점프를 못 봤을 거야.

지금도 생생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 그 아이 모습이. 강당에 모인 아이들 수백 명 중에서 우리 서원이만큼 품위 있는 아이는 없었어. 내가 얼마나 자부심을 느꼈는지, 훗날 그 아이가 남자가 되면 꼭 얘기해주겠다고……"(286쪽)

사실 소설 속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지요. 작가가 변호하듯이 그 사내는 자기 아이를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해보복을 저지하기 위해 온 몸으로 저항했습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꼭 B급 호러영화를 본 기분이 듭니다. 왜일까요. 우리 인생이 B급 호러영화 같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요. 아니면 소설이 너무 '영화화'된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7년의 밤>을 영화화하여 작년에 개봉하였는데, 흥행에는 참패하고 말았었죠. 소설이 인기몰이를 했다고 해서 꼭 영화도 성공하는 것은 아니란 것을 잘 보여준 사례가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