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2011)는 제작비 260억 원으로 일제 강점기 적으로 만난 조선인 청년 준식(장동건)과 일본인 타츠오(오다기리 조), 두 청년의 국적을 초월한 우정을 그린 전쟁영화이다.
#마이웨이 간단 줄거리
어릴 때부터 달리기로 경쟁심이 남달랐던 준식과 타츠오는 1938년 경성의 마라톤대회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두고 다시 맞붙는다.
부당한 판정으로 준식이 타츠오에게 1위를 빼앗기자 조선인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그들 모두는 일본군에 강제 징집된다. 준식은 일 년 뒤 일본군 대위가 된 타츠오를 몽골의 전장에서 다시 만난다.
전장의 회오리로 그들은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 수용소로, 오랜 세월이 흘러 공산주의자가 되어 독일군과 싸우는 노르망디 해변에서 재회하게 만든다.
일제 강점기 경성에서 시작된 그들의 우정은 몽골, 시베리아, 노르망디의 전장을 거치며 진한 형제애로 점점 변해간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들의 우정 쌓기에 왠지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영화 <마이웨이>를 보면 강제규 감독이 너무나도 성급하게 과거와의 화해를 시도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그렇지만 개봉 당시에는 더더욱 일본과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준석과 타츠오의 관계는 우정으로 발전해가기에는 둘 사이의 신분적 간극이 너무 컸음에도 그것을 너무 쉽게 뛰어넘으려는 안이함이 묻어났다.
물론 전쟁이라는 거대 담론에서는 국경은 희미해지겠지만, 그런 경우에도 일본과 한국은 쉽게 융합될 수 없는 근원적인 이질감이 존재하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독일군에 포로로 잡힌 한국인의 사진 한 장이 이 영화의 모티프가 되었다면, 거기에는 <마이웨이>가 보여준 두 사나이의 굴곡보다 더 깊은 우여곡절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결말을 보면 둘이 갑자기 의형제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제작사가 자랑하는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들도 반복적인 데다가 숱한 전쟁영화에서 보아온 클리셰가 남발되어 진부하기까지 하다. 세밀한 서사가 빠져버린 전투 장면들을 보는 일은 끔찍하다.
강제규의 전작 <태극기 휘날리며>(2004)를 기대하고 이 영화를 봤던 관객들은 아마도 많이 실망했을 것이다. 강제규 감독은 이 영화에서는 제작비를 온통 전투신에만 쏟아부은 느낌이 든다.
<마이웨이>의 다음 영화 평점은 6.0, 네이버 영화 평점은 7.18, 기자, 평론가 평점은 5.66점이다. 다음 영화가 제공하는 누적 관객수 집계는 2,142,670명이다.
1990년대 한국 영화를 이끌었던 강제규 영화감독은 이 영화 뒤로 그가 예전에 만들었던 <은행나무 침대> 시리즈나 <쉬리>와 같은 히트작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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