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문명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Tree Days 2020. 4. 16. 19:00

국제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갈 때마다 2008년 타계한 새뮤얼 헌팅턴의 대표작 <문명의 충돌>(이희재 옮김, 김영사)을 떠오른다. 우리나라에 1996년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지난 1993년 미국 외교 전문잡지 '포린 어페어스'에 먼저 논문으로 실었던 것을 수정 보완해 책으로 발간되었다.

저자 새뮤얼 헌팅턴은 새롭게 태동하는 세계 정치구도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위험한 변수는 상이한 문명을 가진 집단들 사이의 갈등이 될 것이라는 논문의 내용을 다듬어, 세계를 중화권, 일본권, 힌두권, 이슬람권, 그리스도교권, 라틴아메리카권, 아프리카권 등 7개 문명 권역으로 나누고 각 문명권은 핵심국을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계속한다는 문명 패러다임을 <문명의 충돌>에서 제시했다.

출간된 지 십 수년이 넘은 책이지만 정치이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국제관계가 문명에 기초한 새로운 국제관계로 대체된다는 저자의 통찰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에서 왜 최강국 중국을 배제하는지, 왜 인도와 무기거래 계약을 체결하는지, 또한 왜 일본 천황에게 90도 각도의 인사를 해야 하는지를 『문명의 충돌』를 통해 상당 부분 유추해 볼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에 대처하는 외교 전략의 부재로 수많은 침탈과 압제를 당한 아픈 기억이 혈관 속에 흐르고 있는 우리로서는 눈여겨 볼만 하다. 비록 저자가 제시하는 해석 틀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서구 편향적이기는 하나, 대표적인 서구 지식인의 세계의 판도에 대한 분석은 복잡한 국제정세에 관한 거시적인 안목을 키우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뮤얼 헌팅턴이 그렸던 ‘문명의 충돌’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에서 세계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요소는 문명과 문명의 충돌이라고 본 새뮤얼 헌팅턴의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paradigm)은 냉전체제가 끝난 시점에 세계를 바라보는 해석 틀이 혼란스럽고 부재하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냉전이 진행되던 40년 동안 국제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일선에서 뛰는 전문가들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유용한 세계상, 곧 ‘냉전 패러다임’을 통해 생각하고 행동하기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 거의 보편적으로 수용되었으며 두 세대 동안 세계 정치의 이해 방식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되었다. 저자는 냉전 이후의 국제정세의 변화를 해석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학자들이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정책 입안자들이 쓸모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세계정세를 바라보는 해석 틀을 제공하기 위해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헌팅턴의 문명 패러다임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비교적 간단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하지는 않은 지도를 보여준다. 세계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그 안에서 효과적으로 행동하려면 현실을 어느 정도 추상적으로 처리한 지도와 같은 이론, 개념, 모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그러한 지적 구성물이 없다면 제임스(Willim James)가 말한 대로 지독한 소음에 휩싸인 혼돈과 무질서가 있을 뿐이다. 세계관과 인과적 설명은 국제 정세의 필수 불가결한 길잡이다. 그런 점에서 탈냉전 세계 정치의 중심축은 힘과 문화의 차원에서 전개되는 서구 문명과 비서구 문명의 상호 작용이라는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저자의 ‘문명 충돌’은 우리들에게 유용한 해석 틀을 제공한다.

저자는 문명은 유한하긴 하지만 아주 오래간다고 보았다. 문명은 진화하고 적응하며, 인간의 결속체 중에서도 유독 질긴 생명력을 갖는다. 문명의 독특하고 특별한 본질은 바로 그 장구한 역사적 지속성에 있으며 사실상 가장 오래된 이야기가 바로 문명이다. 제국은 일어섰다 무너지고 정권도 왔다가 사라지는 속에서도 문명은 유지되며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념적 격변의 와중에서도 살아남는다.

20세기의 사실상 거의 모든 주요 문명들은 1천년이 넘게 지속되어 왔거나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처럼 다른 장구한 문명의 파생물이다. 토인비는 문명은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부터 일어나며, 창조적 소수의 주도로 환경에 대한 지배력 강화의 과정을 거쳐 시련의 시기를 맞이한 뒤 보편 국가가 성립하였다가 해체의 과정으로 들어선다고 말한다.

최소한 열두 개의 주요 문명에 대해서는 무리 없는 합의가 학계에서는 이루어져 있다. 그중 일곱 개(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크레타, 그리스-로마, 비잔틴, 중미, 안데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다섯 개(중국, 일본, 인도, 이슬람, 서구)는 지금도 존재한다. 다수의 학자들은 여기에다 그 모체인 비잔틴 문명이나 서구 크리스트교 문명과는 별개로 러시아 정교 문명을 덧붙이기도 한다. 저자는 이 여섯 개의 문명에다, 현재의 세계를 좀 더 잘 반영하기 위하여 라틴아메리카, 나아가서는 아프리카 문명을 추가하여 ‘문명 충돌’을 전개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서구의 장악력은 192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다가 그 후 불규칙하지만 뚜렷한 하강세에 있다. 절정기로부터 100년이 지난 2020년대의 서구는 세계 영토의 24퍼센트(절정기에는 49퍼센트), 세계 총인구의 10퍼센트(절정기에는 48퍼센트), 세계 총생산의 30퍼센트(절정기에는 70퍼센트), 제조업 생산량의 약 25퍼센트(절정기에는 84퍼센트), 전 세계 병력의 10퍼센트 미만을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즉 2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서구의 세계 경제 지배는 오래지 않아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면, 20세기 후반부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현상의 하나는 동아시아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이라고 꼽았다.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은 아시아와 서구, 특히 미국과의 세력 균형에 변화를 낳고 있다. 경제 성장은 국가 내부는 물론 국가들 사이에서 정치 불안을 낳아 국가 간, 지역 간 세력 균형에 변화를 가져온다.

역사적으로 경제 교류는 민족 간의 차이점에 대한 높은 각성과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낳았다. 국가 간의 무역은 이익만이 아니라 갈등을 낳는다. 아시아의 경제적 서광은 아시아의 정치적 그늘, 곧 아시아의 불안정과 갈등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 최대의 강국인 중국의 경제 성장은 이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고 중국이 동아시아에 대하여 전통적 헤게모니를 재주 장하고 나서는 모습은 최근 언론 보도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아시아가 경제 발전을 배경으로 점점 자신의 목소리를 놓여가는 것이라면, 이슬람 국가 대부분은 정체성․의미․안정․정당성․발전․권력․희망의 근원으로서 “이슬람이 해답이다”라는 구호에 집약되어 있다. 새로운 이슬람은 근대화는 받아들이되 서구 문화는 거부하며, 이슬람에 다시 귀의해가는 것을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차원에서 근대 세계의 올바른 생활방식으로 이해한다. 그 결과 앞으로 몇십 년 동안은 비서구 문명의 힘이 지속적으로 증대하면서 비서구 문명과 서구 문명의 충돌, 비서구 문명과 비서구 문명의 충돌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다가올 문명의 충돌을 다음과 같이 전망한다.
“미시적 차원에서 보면 폭력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단층선은 이슬람과 이웃한 정교, 힌두, 아프리카, 서구 크리스트교 문명 사이에 놓여 있고, 거시적 차원에서 보면, 지배적 대립은 서구 대 비서구의 양상으로 나타나겠지만, 가장 격렬한 대립은 이슬람 사회와 아시아 사회, 이슬람 사회와 서구 사회에서 나타날 것이다.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 이슬람의 편협함,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다. 특히, 탈냉전 세계의 중요한 국제 관계의 경연장이 있다면 그것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특히 동아시아이다. 아시아는 문명의 가마솥이다.” 

문명 충돌의 시사점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자기 회의와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며 맹목적으로 서구 문화에서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성공의 열쇠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우리들은 서구의 가치나 제도가 서구가 가진 힘과 부의 원천으로 이해하였다. 20세기 초반의 중국 지식인들은 베버(Marx Weber)처럼 중국 후진성의 원인을 유교에서 찾았으나, 20세기 말엽의 중국 정치 지도자들은 서양의 사회 과학자들처럼 중국 발전의 원인을 유교에서 찾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비로소 아시아인들은 그들의 경제적 성공이 문화적, 사회적으로 타락한 서구보다 우월한 아시아 문화에 크게 힘입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이나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이 초래한 대량 양민학살을 기억하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이 기대는 거대한 언덕은 종교라고 말했다. 또 이슬람이 국제적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 폭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남달리 높으며 전투성과 화합 불능성은 이슬람의 지속적 특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특정 종교가 본질적으로 폭력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에 쉽게 동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저자가 주장하는 ‘이슬람의 편협함’ 만큼이나 서구 제국주의자의 편향된 시각에 불과하다.

미국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지낸 나이(Joseph Nye)는 ‘딱딱한 힘(hard power)'과 ’ 소프트 파워(sorft power)'을 구분했다. 딱딱한 힘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힘이고, 부드러운 힘은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른 나라들이 원하도록’ 만드는 한 나라의 힘이다.

한 나라의 문화와 이데올로기가 매력적이면 다른 나라는 기꺼이 따라올 것이며, 따라서 부드러운 힘도 명령을 내리는 딱딱한 힘 못지않게 중요하다. 문화와 이데올로기는 그것들이 물질적인 성공과 영향력에 뿌리를 둔 것으로 파악될 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부드러운 힘은 딱딱한 힘의 토대 위에서만 힘을 갖는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단단해지면 자신감과 자부심도 올라가며, 자기 문화 혹은 부드러운 힘의 상대적 우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지는 것이다.

나이가 말했듯이 부드러움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하드파워가 받쳐줘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서구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지, 특히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세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감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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