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열두 발자국>을 읽으며 하루밤을 보냈다. 책을 덮었을 때,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불면으로 고생할 때에는 책을 읽는 것이 그나마 킬링 타임으로 좋다.
이 책을 다 읽고 든 생각, 정재승은 강의도 잘하고 책도 재밌게 잘 써는 저자구나, 무엇보다 운이 잘 따라주고 의미 충만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 '열두 발자국'은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디딘 열두 발작국'을 줄인 것이라고 한다.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의 숲으로 여섯 발자국>의 패러디인 셈이다.
<열두 발자국>은 1.4킬로그램의 작은 우주인 인간의 뇌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여 우리가 의사결정을 하고 선택을 하는지를 탐구한 과학자들의 실험들과 연구 사례들을 적당하게 소개한 책이다.
진화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열두 발자국>에 소개된 사례들을 거의 대부분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심리학 관련 책에서 빈번히 인용되고 있는 '마시멜로 첼린지', '첫인상과 투표실험', '햄릿 증후군', '피니어스 게이지' 환자 사례, '마시멜로 테스트', '호모 루덴스', '1만 시간의 법칙' 등의 재료를 가지고 근사하게 또 한 권의 책으로 이야기를 엮었다.
'마시멜로 첼린지'는 기업 연수 등에서도 많이 활용하는 게임으로 네 사람에게 스무 가닥의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 그리고 마시멜로 한 개를 주고 18분 동안에 탑을 쌓는 게임이다. 그랬더니 MBA학생이나 변호사, CEO보다 유치원생이 더 높은 탑을 쌓더라는 것이다.
'마시멜로 첼린지' 게임은 완벽한 계획을 세운 후에 실행하는 것보다 먼저 실행을 하고 계획을 수정해 나가는 것이 결과가 더 좋음을 시사한다. 저자는 이런 실험 사례들이나 개념들을 맛깔나게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한 권의 책을 완성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열두 발자국>은 2018년 2월 발행하여 2018년 12월 10일 초판 22쇄를 찍었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왜일까? 역시 책은 문장력이 좋고 구라도 적당히 칠 줄 아는 사람이 써야 재밌게 읽히고 잘 팔린다. 그리고 텔레비전에 나와 얼굴을 비추는 것이 흥행에 필수가 된 시대가 되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광고처럼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물론 우리가 어떤 과정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선택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미지의 영역으로 겨우 첫발을 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들의 뇌 속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충 감을 잡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도 저자의 능력이다.
<열두 발자국>이 인용하고 있는 원전을 찾아서 읽어보면 우리들의 생각이 보다 명료해질 수도 있다. 뇌과학에 관심있는 독자들을 더 깊은 세계로 안내한다면 이 책은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과학 대중화에 힘쓰고 있는 저자에게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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