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가야 건국신화의 구지가는 가야시대의 대중 가요였을까?

NeoTrois 2019. 3. 24. 17:36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술성을 지닌 서사시이자 노동요로 알려진 노래는 “구지가”입니다. 해마다 국어 교과서에 빠짐없이 수록되는 가락국기의 수로왕의 탄생신화에 등장하는 고대 시가입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최근 구지가의 신비를 풀어줄 직경 약5cm 크기의 토제(흙으로 만들어진) 방울이 가야 고분군의 하나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정비과정에서 출토되면서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고령군과 대동문화재연구원이 지난 3월 20일 가야 고분군 유적 발굴조사 성과를 현장 발표했는데요, 시골임에도 많은 취재진과 관계자들이 몰렸습니다.

이번 발굴 조사에서 5세기 후반 ~ 6세기 전반에 조성된 소형 석곽묘 10기와 돌방무덤 1기에서 토제 방울, 소형 토기, 쇠 낫, 화살촉, 곡옥, 어린이 치아, 두개골편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 토제방울에 새겨진 6개의 그림은 작고 선이 약해 현미경으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아이의 무덤에서 출토된 토제방울에는 6종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는데요, 연구원 측은 이 그림이 가락국기의 건국신화 내용과 부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현장에서 브리핑했습니다. 

아직 토제방울의 그림 6종에 대한 전문가의 연구와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먼저 연구원의 발표 내용에 따라 그림 1~6까지 차례대로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림 1은 구지봉 또는 남성의 성기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북머리를 수로, 구지봉 혹은 남성 성기로 해석하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그림 2는 구지가에 등장하는 거북이라는 것인데요, 6종의 그림 중에서 거의 이견이 없을 듯한 선명한 그림입니다.

그림 3은 관을 쓴 남자, 즉 구간으로 볼 수 있다는 그림입니다. 일부에서는 바다 생물이 아니냐는 견해도 있습니다.

가락국기의 건국신화에 의하면 9명의 족장들이 수로왕을 맞이하기 위해 300명의 마을 사람들에게 구지가를 합창하게 했지요.

그림 4는 춤을 추는 여자라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개구리가 아니냐는 이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구지가에 나오는 거북이 머리를 남근으로, 구워 먹으리를 여성 성기의 메타포로 보고 고대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노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그림 5는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으로 해석했는데, 이 역시 사람으로 보기에는 다소 어려워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봐서는 네발달린 짐승으로 보입니다.

그림 6은 하늘에서 줄에 매다려 내려오는 금합을 담을 자루라는 것입니다. 바로 저 금합에 6개의 황금알이 담겨 있었고, 알은 자라 수로왕과 여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자,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전문가에 따르면 고대의 그림들은 안목과 식견에 따라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합니다.

연구원 측 주장이 가야 건국 신화에 억지로 끼워맞추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만, 수로왕의 탄생신화를 묘사한 그림이 맞다면 이는 가야의 건국신화를 담은 최초의 유물이 됩니다.

토제 방울 그림 6종이 가야시대 당시 건국신화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천손 신화의 체계를 갖추게 되는 획기적인 유물로 평가되면서 국보의 지위도 넘볼 수 있겠지요.

그동안 가야제국은 김해의 금관가야 중심의 건국신화를 기본으로 고령의 대가야 등 다른 가야에서 금관가야를 가야국의 원류로 인식해 왔습니다.

그런데 연구원 측은 남성 성기가 여신 정견모주가 노닐던 가야산 상아덤을 표시한 것이라며 난생 설화가 금관가야의 전유물이 아닌 가야 공통의 신화일 가능성이 크며 토제방울은 대가야 시조의 탄생설화를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그보다는 토제 방울이 고령 대가야의 건국신화인 정견모주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가야의 건국 신화에는 구지가로 대표되는 거북이는 1도 등장하지 않고 금합을 담은 자루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야산신(정견모주)과 천신 사이에서 태어난 두 형제 중 두 형제 중 첫째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되고, 둘째가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는 것이 고령 대가야의 건국신화이니까요.

고령 대가야에서도 정견모주가 아닌 수로왕에게 바치는 주술적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면 오히려 가야 후기조차도 대가야가 맹주였다는 학설은 설자리가 없어집니다.

수로왕의 탄생신화가 그려진 토제방울을 대가야의 어린 아이 무덤에 같이 묻었다는 것은 구지가가 김해는 물론 고령지역까지 광범위하게 불리고 있었다고 해석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가야 건국신화의 구지가가 가야시대의 대중 가요였을 수도 있겠지요.

어린 아이 무덤을 만들어 준 사람(부모?)은 아마도 아이가 평소에 즐겨 부르던 노래(구지가)를 그림으로 새겨 넣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면, 아이의 사후를 비는 부모의 마음이 투영된 그림을 새겨 넣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든 토제방울은 가야의 실체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유물이 될 것이라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