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창녕의 역사가 새겨진 '신라 진흥왕 척경비'

NeoTrois 2019. 3. 20. 18:10

창녕은 <삼국사기>가 전하는 진한 12개국 중의 하나인 불사국이었다가 가야제국의 하나인 비사벌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창녕읍 교리에는 이 시기의 고분군들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창녕은 고대에 비지, 비사벌, 비화 가야로 불린 것으로 추정합니다. 비는 빛으로 해석됩니다. 곧 빛의 땅, 빛의 뜰, 빛불의 고을이 창녕인 셈입니다. 

그러나 창녕의 대표적인 국보는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33호)가 꼽힙니다. 창녕의 정체성을 밝혀줄 키워드들이 비문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김해지역의 김수로왕이 42년에 세운 금관가야는 532년에 멸망되었고, 고령의 대가야가 562년에 멸망됨으로써 가야시대는 신라에 의해 막을 내리게 됩니다. 

신라 진흥왕 척경비가 561년 비화가야(비사벌국)였던 창녕의 화왕산 기슭에 세우지고 1년 후 마지막 가야, 고령 대가야가 신라에 복속된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신라 진흥왕이 가야제국 중 마지막 남은 고령 대가야를 정복하기 위하여 전군 지휘관 회의를 창녕에서 소집했을 개연성이 높아 보입니다. 

신라 진흥왕 척경비를 제대로 알려면 실물이 위치한 만옥정 공원보다 창녕 박물관으로 가시는 것이 더 좋습니다.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옆에 위치한 창녕 박물관에는 신라 진흥왕 척경비의 모조품에 홀로그래피를 비추어 비문 내용을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습니다. 

진흥왕 척경비는 자연 화강암석에 27행 27열에 643자를 세로로 새겨 넣고 테두리선이 돌려져 있습니다. 

643자 중 육안으로 읽을 수 있는 글자는 몇자 안되지만 지금까지 400여자를 판독하였습니다.

진흥왕 척경비에는 순수관경(巡狩管境, 임금이 나라를 둘러본다는 옛말)이 보이지 않고 비석의 모양도 북한산비, 마운령비, 황초령비 등 다른 순수비들과 차이가 있어 척경비라고 불립니다.  

그럼 창녕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진흥왕 척경비 해석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척경비는 “561년 2월 1일에 세웠다. 과인은 어려서 왕위에 올라 정사를 보필하는 신하에게 맡겼다.”로 시작합니다.

신라 제24대 왕인 진흥왕은 7세 때인 540년에 왕위에 올랐고, 555년에 창녕에 '완산주'를 설치하여 정복지에 대한 지배체제를 강화했으며, 576년 가을에 일생을 마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비문에 비사벌국을 점령한 사실, 점령지에 대한 형별과 정책, 수행한 42명의 관직명과 출신지, 이름들이 차례로 새겨져 있습니다. 

비문을 보면 고대 신라인들이 아주 세세하게 기록을 남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라인들은 천오백년이라는 시공을 뛰어넘어 자신들의 기록이 전해질 것이라 상상이나 했을가요?

신라 진흥왕 척경비는 현재 창녕읍내 만옥정 공원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만옥정 공원에는 척경비 외에도 대원군의 척화비와 통일신라시대 석탑인 ‘퇴천리 삼층석탑’, ‘창녕객사’도 있어 창녕 비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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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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