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나는 문학이다, 장석주의 한국문학 100년 인물사

NeoTrois 2019. 3. 3. 02:11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 그리고 시인 장석주는 한국 문학사에 괴물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문학사에서 일종의 정전(正典)을 쓴 인물들, 문학을 여기(餘技)가 아니고 진정성을 갖고 임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묶었다."라는 저자의 말은 <나는 문학이다>에 대한 정확한 소개글입니다.

<나는 문학이다> 한국 근·현대문학사 100년 동안 명멸했던 문인 111명에게 바치는 시인의 오마주인 셈입니다. 

현대소설의 아버지 이광수에서부터, 김동인, 김소월로 출발한 한국문학의 맹아기로부터 공지영, 기형도, 김영하로 이어지는 1990~200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문학까지 대략 10년 기간 단위로 총 8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책은 한국 문학사의 정전을 기록하려는 저자의 강렬한 욕망으로 1993년께부터 300~400명에 달하는 문인들에 대한 평전, 일화, 언론 인터뷰 등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며 시작됐습니다.

경기 안성 금광호숫가 '수졸재(守拙齋)'라는 집에서 장서 2만여권과 함께 독서와 집필에 전념하는 저자는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점심 때까지 글을 쓰고, 오후에는 방송활동과 8시간 동안 책을 읽는다고 하니 경외감마저 느껴집니다.

장석주는 한 주 평균 2박스 분량을, 년간 평균 1200~1500권을 사고, 책을 사는 것만큼이나 책을 쓰는 것으로도 유명한 작가입니다.

문학을 좋아하고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되는 책입니다.

무수한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디며 살아남은 고전에 대한 저자의 비평과 따분한 평전식에서 벗어난 풍부한 일화들은 오래된 문인들의 삶을 입체감 있게 되살려 놓습니다.

다음은 홍명희 편으로 이약기가 인상적이라 인용해 둡니다.

홍명희(1888~1968)는 충청도 괴산에서 명문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는 이조 판서를, 조부는 참판을 지냈고, 아버지는 경술년 국치에 자결한 홍범식이었다.

이 풍산 홍씨 문중은 자체로 문고를 이룰 만큼 많은 저술을 남긴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문학가로는 <한중록>의 혜경궁 홍씨, <순오지> 등 비평적 업적을 남긴 홍만종, 그리고 바로 <임꺽정>의 홍명희를 꼽을 수 있다.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노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구나. 피치 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는 어떻게 하나 조선 사람으로서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잃어진 나라를 기어이 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

홍명희는 아버지가 남긴 이 유언을 액자에 끼워서 책상 앞 벽에 걸어놓고 평생 이를 지키려고 애쓴다. “나는 <임꺽정>을 쓴 작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다. 홍범식의 아들, 애국자다. 일생 애국자라는 그 명예를 잃을까 봐 그 명예에 티끌조차 묻을세라 마음을 쓰며 살아왔다”는 말은 그의 이러한 마음가짐을 잘 나타낸다. - 현승길, <통일 염원에 대한 일화>, 『통일 예술 창간호』

-장석주, <나는 문학이다>(나무이야기, 2009년), 홍명희 편

홍명희를 임꺽정의 작가로만 알았지, 그가 홍범식의 아들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문학이다>는 읽음으로서 우리가 평면적으로 알고 있었던 문인들이 보다 입체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