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역사가의 상상게임

NeoTrois 2019. 4. 19. 13:47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2006)은 미시 사가의 섬세한 관찰과 역사적 상상력으로 조선 영정조 시대의 역모사건을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재구성한 책입니다.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2007)를 통해 처음으로 이 책을 알게 되었고, 미시사에 대해서도 그 대강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자 백승종은 서강대 사학과 교수를 지냈고,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과 독일 막스 플랑크 역사연구소의 초빙교수로 미시사의 이론과 실제를 연마했습니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은 영정조 시대에 일어났던 세 가지 역모사건 - 남사고비결 역모 사건, 문인방의 정감록 역모 사건, 문양해의 정감록 사건들을 통해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던 조선후기 사회의 중층성을 밝힙니다.

저자와 역모자와의 대화가 등장하는가 하면, 역모자들이 최후 진술을 하기도 합니다.

가상의 상황에 대한 서사적 묘사가 있고, 추리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반대 심문과 추론도 등장합니다. 백승종은 이러한 서술 방식을 '역사가의 상상게임'이라고 말합니다.

백승종,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 푸른역사, 2006

이 책을 역사도 소설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소설인지, 역사인지 당혹스럽기도 한데요.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역사는 단 하나의 진실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사라진 자들의 삶에 담긴 의미와 진실을 추적해 보는 것 또한 역사적 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은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미시사로 평가받을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조선 영정조 시대를 문예부흥 시대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멸망을 예언한「정감록」등의 비기들은 예외 없이 비밀결사 단체가 배경이었고, 그들은 또한 예외 없이 새로운 세상을 꿈꿨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기록은 그저 기록자의 생각일 따름이다. 역사는 기록과 더불어 시작되지만 기록의 벽을 깨는 것이야말로 역사적 사고다." 

저자는 역사적 사고를 통해 조선의 지배층들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의 벽을 깨고 역사기술의 새로운 지평의 개척을 시도했습니다.

저자는 관상에도 내공이 깊습니다.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의 캐리커쳐와 함께 간결한 관상평을 곁들여 놓았습니다. 정조의 관상평은 이렇습니다.

천 년에 한 번 태어날 명왕의 모습이다. 사려가 깊고 흔들리지 않는 그의 영도력은 두 눈동자와 눈썹 그리고 입술에 쓰여 있다. 가느다랗고 가지런한 수염은 날카로운 얼굴선과 함께 왕의 삼세한 감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깝도다. 자식 운이 약하고 타고난 명이 별로 길지 못할 것이다. 왕은 마음이 굳으면서도 지나치게 예민한 것이 병통이라. 머리가 지어낸 생각을 두 손이 이루지 못할 운세니 중길(中吉)이라 하겠다.(210쪽)

백승종 교수는「정감록」을 조선 후기 성리학에 반발하여 평민지식인들이 내놓은 일종의 대항 이데올로기로서 평가했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두 축이 경합함으로서 동력을 생산하여 굴러왔기 때문입니다. 

「정감록」이 진화하여 후에 19세기 말 최제우의 동학운동으로 성장하였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입니다.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의「정감록」에 해당하는 사상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요? 한 축으로만 추동하는 역사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마 없을 수는 없겠지요.

역사, 특히 미시사에 관심 있는 분들과 조선 영정조 시대의 정감록 등 예언서에 관심 있는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