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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토지의 사적 소유 정당할까?

NeoTrois 2019. 5. 30. 12:05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1997)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 답을 찾는 사람들이 읽어볼 만한 고전입니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혁신적인 기술개발로 전례 없는 생산력 향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왜 전과 다름없는 최저 생계비로 빈곤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헨리 조지는 미국 남북 전쟁이 일어나고 대륙횡단철도가 부설되는 등 전환기에 갖은 직업을 전전하면서 가난을 혹독하게 경험하며 소년기를 보냈습니다.

헨리의 태생적인 운명은 독학으로 진보와 빈곤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에 천착하게 만들었습니다. 학문적으로 독특한 경지에 오른 헨리 조지는 저술가와 언론인으로서 사회개혁가들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헨리 조지는 현대 문명을 저주하고 위협하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의 원인, 즉 부가 증가하는 데도 빈곤이 심화되고, 생산력이 커지는데도 임금이 억제되는 이유는 모든 부의 근원이자 모든 노동의 터전인 토지가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 진보가 결국에는 빈곤을 없애줄 것이라는 안이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금욕적 절제를 통해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편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정부의 절약이나 노동자 계층의 교육 향상과 근면 절약하는 습관, 임금 인상을 위한 노동자의 단결, 노동과 자본의 협동조합 방식, 정부의 지시와 간섭, 토지 분배의 확산 등으로는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는 것이지요.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김윤상 역, 비봉사, 1997)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들 해결책들은 임기응변에 불과합니다.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겨우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최저액에 머무는 이유는, 생산력의 향상과 더불어 지대가 더 큰 비율로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보면 헨리 조지의 아주 오래전 분석이 얼마나 탁월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빈곤을 타파하고 임금이 정의가 요구하는 수준 즉 노동자가 벌어들이는 전부가 되도록 하려면 토지의 사적 소유 등을 공동소유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헨리 조지에 따르면 물과 공기처럼 토지도 사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생산자가 생산으로 인해 배타적 보유와 권리를 갖는다고 할 때, 노동의 생산물이 아닌 토지의 사적 소유는 옳지 못하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부의 본질적 성격은 노동의 구체적 결과라는 점, 인간의 노력에 의해 생긴다는 점, 그리고 그 존재와 부존재 및 증가와 감소는 인간에 의존한다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토지의 본질적 성격은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인간의 노력과는 물론 인간 자체와도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토지는 인간이 존재하는 터전이자 환경이고,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는 창고이며, 노동에 필수 불가결한 원료이자 힘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적 정의는 부의 사유는 인정하지만, 토지의 사유는 부정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의 불평등한 기원을 근원부터 해결하는 방법은 응당 토지사유제의 철폐에 있을 것이나, 헨리 조지는 이러한 혁명적인 방법보다는 토지가치에 상응하는 지대를 징수하는 방법인 토지 조세를 제안합니다.

토지조세를 제외한 다른 모든 조세를 철폐하는 것만이, 부동산 투기도 없어질 뿐 아니라 경제활동을 진작시키며 부의 정의로운 분배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이 논점을 다루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습니다.
뜬눈으로 천령의 첫날 밤을 지새고나니 다시 방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방이 깨끗하여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를 다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