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NeoTrois 2019. 4. 11. 14:16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2007)는 비상한 인생을 살았던 푸코의 생애를 조명하고, 푸코의 철학을 임상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책입니다. 

타자의 사유를 펼친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격자화하기가 쉽지 않은 인물입니다.

푸코의 동료인 들뢰즈는 푸코를 고고학자-아키비스트로 표현했으나 푸코 자신은 '사회 공통의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교사'일 뿐이라고 자처했습니다.

동성애자였던 푸코는 10대 때부터 극심한 고통과 분열을 겪었습니다. 

자살시도와 패배감, 사회에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자의 '비정상성'들은 푸코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동성애자, 자위행위자, 범죄자, 광인, 부랑 등과 같은 비정상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푸코는 20대부터 철학과 문학, 역사, 정신 병리학, 정치경제학을 치열하게 공부했습니다.

광활한 인문학을 바탕으로 타자로서 존재하는 한 개인의 실존적 아픔, 패배감, 비정상성들을 역사적 연구 대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구조적인 이야기로 승화시켰던 것이죠.

그러한 결과물들인 <광기의 역사>는 현대 철학을 시작한 전문 철학서, <말과 사물>은 한 시대를 풍미한 프랑스 구조주의의 정점으로, <감시와 처벌>은 권력의 미시 물리학을 통해 현대 사회의 운영 메커니즘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 역작으로 평가됩니다.

푸코는 개인이 불행한 이유가 사회 수호 권력이 끊임없이 개인을 타자화하면서 비정상성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푸코가 말하는 사회 수호 권력은 정치가, 자본가, 관료들은 물론이고 사회 각 방면에 다양한 정부를 수립한 일상화된 권력을 뜻합니다. 

이들 정부들은 개인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가르고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에 자신의 사명을 두기 때문에 개인은 언제나 다양한 권력이 제도화하는 규율에 의해 단련되고 규제되고 규격화되는 존재가 됨으로써 실존적 아픔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푸코의 관점입니다.

푸코의 이러한 분석은 현대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저자 이영남이 분석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생산성이라는 단일 가치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구호도 너무나 귀에 익숙하지 않은가요?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생산적이어야 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은 어떤 저항이나 성찰 없이 그대로 먹혀들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개인은 경제발전과는 무관하게 언제나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실존적 불행을 감당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회 권력이 촘촘하게 규율하고 재단하는 관계망에서 개인이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은 요원합니다.

그러나 푸코는 희망을 잃지 않고 <지식의 고고학>에서 "쓴다는 것이 필요할 때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 이영남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가능한 것을 꿈꾸며 글을 읽을 때, 그 글을 읽고 무엇을 쓸 때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푸코의 고백처럼 쓴다는 것이 필요할 때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329-330쪽)

그렇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가 열정에 가득 차서, 하고 싶은 일에 스스로 몰입할 때 자유를 느낍니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 모두는 역사가일 것입니다.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