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페터 빅셀,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NeoTrois 2019. 7. 9. 09:25

페터 빅셀 산문집《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전은경 옮김, 푸른숲, 2009)는 요즈음 만나 보기 어려운 문장으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느릿하게 이야기한다.

1935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태어난 페터 빅셀은 졸로투른에 살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로 13년간 일하다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46년 《사실 불루 부인은 우편배달부를 알고 싶어 한다》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뒤렌마트, 프리쉬와 더불어 스위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페터 빅셀의 산문집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잠이 절로 오는 듯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생관에는 여유와 한가로움, 그리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잔잔한 애정이 묻어난다.

페터 빅셀의 문장은 결코 유려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기다림을 기다리는 노년의 소박함이 베어 나오는 문장들이 사람을 잡아끈다.

작가에게 일상은 시시하고 보잘 것 없는 순간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으로 다가온다. 흥정이나 상거래가 점점 짧아져가는 것에 대하여도 아쉬워한다.

지금은 모든 상거래가 짧다. 우리는 차표를 자동 발매기에서 꺼내거나 인터넷에서 직접 출력한다. 나도 현금 인출기로 돈을 찾는데, 왠지 모르게 늘 창피한 느낌이다. 작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창구에서 일하는 직원 쿤씨에게 고답다고 말하고 그녀와 몇 마디 더 주고받을 때처럼(p163)

자동 발매 기기에서 거래를 할 때 이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신 분들도 아마도 있을 것이다. 세상은 점점 인간이 사라져가는 듯하다.

인간이 사라진 자리를 기계가 대신하고 있고, 우리는 그 기계들에 점점 익숙해진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수록 세상은 더욱 편리해진다. 아이러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더욱 바쁨에 내몰린다. 페터 빅셀은 목적 없이 기차 타는 것을 좋아하고, 선술집에서 기다리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페터 빅셀에게 세상과 인생은 그러니까 그냥 거기 있는 것으로 여유 자적하는 한가로움이다. 작가가 인용한 프랑스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의 사랑의 정의는 그래서 의미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우리들이 바쁜 나머지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곤 하는 인생의 짠한 대목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산문집이다.

언제가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러 오전 10시쯤 출발해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딸에겐 너무 짧은 여름 방학이었고, 기숙사 방에서 딸과 포옹하고 혼자 떠나올 때 정말 슬펐다.

아이들이 가고 나면 홍역을 앓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