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허수아비춤, 불매 운동과 경제 민주화

NeoTrois 2020. 1. 30. 20:00

조정래의 <허수아비춤>(문학의문학, 2010)은 소설가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에 해당한다.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2010)를 읽었을 땐, 이 나라의 재벌 비리가 피부에 와 닿지 않았었다. 재벌비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폭로자를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검사를 그만두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삼성에 들어가 온갖 비리를 저지르다가 종착역 부근에서 양심선언을 하는 그의 태도에 신뢰감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 조정래는 1943년 순천에서 태어나 1970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그의 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한국 근현대사 3부작으로 통한다.

조정래는 <허수아비춤>에서도 우리 민족이 걸어온 시대의 모순과 비극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집념을 변함없이 보여주었다. 

물론 <허수아비춤>이 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작품인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 든다.

나는 그의 문장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지나치게 토속적인 농담은 그렇다 쳐도 입체감 없는 캐릭터와 무거운 나머지 테이프가 되감기는 듯한 문장들은 <태백산맥>을 독파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했었다.

그러나 작가가 말하듯이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진정한 지식인의 고뇌와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것이 작가의 책무라면, <허수아비춤>은 그 책무를 다한 작품이다.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과 무차별적인 뇌물공세는 매번 수면위에 올랐다가 언제 그랬느냐 듯이 기억에서 잊히고 만다. 그 이유를 작가는 지난 80년대에 피 흘려 ‘정치민주화’를 이룩했지만, ‘경제민주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바야흐로 우리는 ‘경제 민주화’를 이룩해야 할 시점에 와 있으며, 경제민주화로 바로 모든 재벌들이 그 어떤 불법행위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가 취해 있었던 그 환상과 몽상과 망상에서 빨리 깨어나기를 촉구하며 우리가 가진 강력한 문기를 뽑아 들어야 한다며 소설속 주인공의 입을 통해 구체적인 강령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소비자로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권한인 ‘불매’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경제 범죄를 저지른 기업의 상품을 사지 않는 ‘불매운동’을 적극 벌이는 것이다. 그 막강한 소비자의 힘에 대항할 기업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그 굴복으로 마침내 기업들은 투명경영을 하게 되고, 세금도 올바로 내게 된다. 그때에 비로소 ‘기업들이 잘되어야 우리도 잘 살수 있다’는 말이 성립하게 된다."- 조정래의 <허수아비춤>(문학의문학, 2010) p.326.

구체적인 소비자 행동강령으로 ‘불매운동’을 제안한 작가는 또 다른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인터넷 세상에 대한 희망을 노래한다. 재벌이 아무리 무차별적인 뇌물공세를 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불특정다수인 네티즌은 공략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재벌들이 돈의 힘으로 국가의 모든 권력, 언론의 모든 영역을 장악한다 해도 그들이 절대 손아귀에 넣을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인터넷 세상이다.

시민단체들이 연합해 인터넷 세상에서 대중들을 결속시키면 무혈의 경제혁명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그는 줄곧 꿈꾸어 왔던 것이다." - 조정래의 <허수아비춤>(문학의문학, 2010) p.399.

소설 <허수아비 춤>은 문학적인 의의는 별도로 하고, 정치경제적으로 활발한 논쟁이 필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