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투르니에의 <생각의 거울>(2003)은 일상에서 보이는 사소한 사물들의 관계망들을 명료하게 대비시키며 철학적 사유를 시작한다.
미셸 투르니에에게 목욕하는 사람은 우파적이고 샤워하는 사람은 좌파적이다. 왜? 따뜻한 물속에서 목욕하는 사람의 몸은 양수 속에서 떠돌고 있는 태아의 상태와 다름없는 것이어서 퇴행 상태에 놓이게 되고 어머니의 배와 같은 따뜻한 욕조에서 나와야 하는 것은 그에게는 시련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서서 샤워를 하는 사람에게는 맑은 물이 채찍처럼 후려갈기는 순간,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가지고서 죄로부터 씻김을 받으려는 순결성에 대한 강박 관념이 있기 때문에 좌파적이라는 것이다.
미셸 투르니에는 깨끗한 만년설이 녹아 험준한 바위 골짜기 사이로 펑펑 쏟아지는 급류를 맞으며 하는 샤워를 이상적인 것으로 꼽는다. 일상에서야 만년설을 맞을 수는 없겠지만, 약간 서늘한 아침 샤워는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는 한 방법이다.
<생각의 거울>(김정란 옮김, 북라인, 2003)
저자는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남자와 여자, 돈 주앙과 카사노바, 내혼과 외혼, 황소와 말, 사냥과 낚시, 철도와 도로, 재능과 천재성, 존재와 무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소함을 재조명하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다.
'나무와 길' 편에서 아스팔트 포장 도로에 대한 저자의 문장은 철학과 문학의 접점을 잘 보여준다.
반면에 물이 스며들지 않는 아스팔트의 너무나 매끈한 표면 위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미끄러져서, 방향을 바꾸어 멀리 지평선을 향하게 된다. 나무와 집들은 도로 때문에 토대에서 들떠 있어서, 빙빙 도는 미끄럼틀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것처럼 흔들려 보인다. (…그래서) 울퉁불퉁하고 군데군데 틈이 벌어져 풀이 나 있는 것을 바라보면 마음이 즐거워진다."(83-84쪽)
미셸 투르니에는 철학전공 교수 자격시험에 실패하자, 충격 속에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좌절된 철학의 꿈은 그의 문학 작품에서 이야기의 형식으로 발현되었다. 프랑스 현대문학 거장으로 추앙받는 미셸 투르니에는 프랑스 슈아젤에서 2016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셸 투르니에의 <생각의 거울>은 옮긴이 김정란의 말처럼 진지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우아하지만 속물스럽지 않아 지혜의 먹거리로 삼을 만하다. 아주 얇은(200여 쪽) 책이지만, 곱씹을수록 제대로 맛이 나는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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