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김동규의 '멜랑콜리 미학', 그리고 글루미 썬데이

NeoTrois 2019. 6. 15. 09:55

김동규의 <멜랑콜리 미학>(문학동네, 2010)은 한 편의 영화 <글루미 썬데이>를 통해서 사랑과 죽음, 그리고 예술과 철학을 사유한다. 오래도록 여운이 길게 남았던 영화 <글루미 썬데이>(1999)에 대해서 찾아보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철학과 예술을 사유한 <멜랑콜리 미학>은 독특했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 이렇게 사랑과 죽음에 대하여 기나긴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신선했다.

<글루미 썬데이>는 관능적인 여주인공 일로나 바르나이와 그녀를 사랑하는 세 남자의 기묘한 사랑이야기이다. 일로나는 연인 라즐로의 묵인으로 새로운 연인 안드라스와 사랑에 빠진다.

안드라스는 일로나의 생일 선물로 '글루미 썬데이'라는 노래를 헌정하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그 노래를 들으며 자살하게 되면서 '글루미 썬데이'는 유명해진다.

안드라스도 결국 자살한다.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두 남자 사이에 독일군 사령관 한스가 끼어들게 되면서 일로나의 사랑은 복잡한 양상으로 치닫는다.

어쨌든 <글루미 썬데이>는 삶과 죽음, 질투와 배신, 전쟁과 복수, 인간의 사랑과 자유, 그리고 존엄이라는 주제가 복잡하게 얽힌 관능적인 영화다.

김동규는 <글루미 썬데이>를 사유의 창으로 삼아, 서양 문화의 깊은 층위에서 흐르고 있는 멜랑콜리의 정조를 잡아내어 사랑과 예술을 이야기하고 철학을 이야기한다.

김동규는 플라톤과 칸트, 하이데거의 철학 세계를 간명하게 설명하고, 서양 철학사는 유감스럽게도 남성들의 멜랑콜리한 사랑이 주조를 이룬다고 말한다.

사랑은 타자의 침투 사건인데, 플라톤 이래 서양 미학은 타자를 위한 사랑이 아닌, 자신을 위한 나르시스트적인 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사랑은 타자에 대한 사랑이며, 타자를 동화하지만, 결국 타자에 동화되는 사건이다.

플라톤의 <향연>과 <파이드로스>에서 등장하는 사랑은 타자를 동화시키기만 하는 사랑이다. 거기에는 타자에 동화되는 사랑은 등장하지 않는다. 불멸을 향한 욕망의 재생산 구조만 등장하지, 타자의 씨앗에게 자신의 몸과 피를 양분으로 공급하는 희생의 구조는 등장하지 않는다.

타자에게 이화(異化)되는 사건, 그래서 자기 자신의 죽음을 뜻하는 사랑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고뇌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 더욱이 타자는 언제나 타자로서 거리, 부재, 이별, 죽음의 지대에 있기 때문에 사랑은 언제나 애절한 그리움으로 남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멜랑콜리커가 된다.(358-359쪽)

<글루미 썬데이>에서도 일로나를 사랑하는 남자들은 모두 정작 일로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들일 뿐이다.

라즐로는 일로나를 소유하기 위해 안드라스와 그녀를 나누어 갖기로 결심한다. 안드라스는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명예를 위하여 죽음을 선택한다.

반면, 일로나는 연인들을 위하여 한스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한다. 일로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닌, 그녀가 사랑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일로나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을 수 없지만, 연인들을 위해서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여자였다. 이 지점이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사랑이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멜랑콜리 미학>은 이처럼 사랑과 아름다움, 예술과 철학에 대한 깊은 사유를 비교적 쉽게 안내한다. 어려운 철학적인 문제들은 이렇게 쉽게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과 죽음의 순간에 인간은 철학자가 되고 예술가가 된다고 한다. 이 책은 그 멜랑콜리의 정조를 대리 체험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