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킬러들의 도시>(2009)는 어딘가 어수룩한 킬러들의 이야기이다. ‘킬러’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두 남자의 고단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켄과 레이는 명색이 킬러다. 그런데도 총을 챙기고 가지 않아 박물관 앞에서 10센트만 깎아달라고 통사정하기 바쁘다. 총으로 먹고 사는 킬러들이 아닌, 입으로 먹고 사는 킬러들처럼 보인다.
엄청난 양의 대사들은 촘촘한 시나리오와 함께 의미심장한 블랙유머를 쏟아낸다.
<킬러들의 도시> 줄거리
영화의 배경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로부터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관광도시 브리주이다. 운치 있게 흐르는 운하와 고풍스러운 중세의 고딕건물들이 동화처럼 다가온다.
대주교를 암살한 레이(콜린 파렐)는 고참 켄(브렌단 글리슨)과 함께 벨기에 브리주에서 잠수하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켄은 브리주가 시궁창 같은 도시라며 투덜거리는 레이에게 어차피 브리주에 왔는데 잠수기간 2주 동안 느긋하게 관광이나 즐기자고 한다.
브리주 자체가 못마땅한 레이는 관광객에게 뚱뚱해서 종탑에 못 올라갈 거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고, 암스테르담에 가면 창녀들이 널렸다고 사사건건 불만을 털어놓는다.
레이는 기어코 재미거리를 하나 찾아낸다. 거리의 영화 촬영장에서 여인 클로이(클레멘스 포시)를 침실로 데리고 가는데 성공하지만 그녀의 애인에게 봉변을 당한다.
<킬러들의 도시>(개봉 : 2009. 3. 5)
켄의 성화로 관광에 나선 레이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인문학적 재료는 15세기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히로니무스 보스의 그림 “최후의 심판”이다.
유황불이 이글거리는 지옥, 머리가 새인 옥좌의 왕에게 잡아먹히기를 기다리고 있는 죄인들, 이 초현실적인 그림은 레이의 어린 시절을 들추어내고 대주교를 암살하면서 실수로 어린아이를 죽인 일을 떠오르게 하고 그를 눈물짓게 만든다.
이 무렵, 킬러들의 보스 ‘해리’(랄프 파인즈)는 켄에게 전화를 걸어 레이가 원칙을 어겨 대주교를 죽이면서 뒤에 있던 어린아이까지 죽게 만들었으니, 그를 ‘처치’하라고 지시한다.
상명하복을 철저하게 엄수하는 켄은 딜레마에 빠진다. 착한 레이를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켄과 레이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들은 분명 킬러들이지만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고 귀엽기까지 하다. 그들에겐 킬러는 하나의 직업이었고, 실수로 어린아이를 죽였을 뿐이라고 말하면 궤변일까?
켄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안개 자욱한 브리주의 어느 겨울 밤, 초현실적인 기운이 흐르는 중세풍의 거리에 보스 해리가 나타난다. 그 순간 킬러들의 도시 브리주는 동화 속의 작은 도시가 아니라 생사가 교차하는 암흑의 도시가 된다.
해리는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면서도 어린아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그 원칙을 어긴 자는 또 다시 죽임을 당하는 원칙이다. 켄과 헤리의 삶의 원칙은 비단 킬러들에게만 일어나는 충돌은 아닐 것이다.
이들의 원칙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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