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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채식주의자,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작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인간 근원 저 깊은 바닥까지 파고든 연작소설이다. 그래서 조금은 무겁다. 그러나 잘 읽힌다.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연작소설을 놓기 어렵다.

<채식주의자>는 세 편의 중편소설을 엮은 것으로, 먼저 <채식주의자>가 "창작과비평"(2004년 여름호)에, <몽고반점>이 "문학과사회"(2004년 가을호)에, 그리고 <나무 불꽃>이 "문학 판"(2005년 가을호)에 각각 발표되었던 것이다.

소설가 한강의 멘부커 인터내셔널 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수상(2016. 5. 17)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단지 작품성 높은 소설이려니 했다. 호들갑을 떠는 외부에 둔감한 나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더구나 언론매체에 보도된 소설가 한강의 모습은 1970년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여러 보였다. 한강의 애티가 나는 얼굴은 소설가의 그것과는 너무 멀어 보였다. 그래서 더 둔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작가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 작가가 애티 나던 얼굴의 한강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채식주의자>는 흡인력이 강했고, 그 문장들은 둔중하면서도 날이 선 강렬함을 뿜었다.

<채식주의자>(창비, 초판 2007, 초판 27쇄 2016. 6. 5)

멘부커 심사위원회는 <채식주의자>를 이렇게 평했다. "탄탄하고 정교하며 충격적인 작품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그리고 아마도 그들의 꿈에 오래도록 머물 것이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실은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영혜는 어떤 신념에 의하여 채식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단지 어떤 꿈을 꾸고 나서부터 고기를 먹을 수 없었을 뿐이다. 

채식 이후, 영혜는 점점 아이같이 되어가고, 종국에는 식물 같은 인간이 된다. 아니, 식물조차 넘어선 태곳적 존재로 귀환한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영혜의 형부는 그녀의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 자체를 보게 된다.

과연 욕망이 배제된 육체가 존재 가능한 것이기는 한가. 작가 한강은 존재 불가능한 세계에 대한 알 수 없는 아름다움을 독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유한자로서의 인간이 가지는 욕망의 덧없음을 변주한다. 

그리고 영혜의 몽고반점은 형부의 예술혼을 격발시킨다. 세상의 경계에서 서성이던 형부는 몽고반점의 그 강렬한 끌림으로 예술의 극한, 그 위험한 경계에 정신없이 진입하고 만다. 

소설가 한강은 <채식주의자>에서 인간과 인간이 구축해 온 이데올로기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보다, 인간 존재 그 자체에 파고드는 집요한 끈질김을 통해 독자들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과연 세상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채식주의자>의 마지막 주인공, 영혜의 언니는 자신의 남편과 동생의 이 극한의 세계를 목격하고 만다. 그녀는 정작 비정상적인 행위로 받아들였을 뿐이지만, 그 이미지는 두고두고 그녀의 존재자체를 흔들게 된다. 아마도 그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언니처럼 내 존재를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영혜와 영혜의 몽고반점, 그리고 그것에 모든 것을 걸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마도 오래도록 내 존재를 흔들고 있을 것 같다. 

아무것도 눈동자에 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시선, 그 시선이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채식주의자>와의 만남은 이번 휴가 때 처음으로 떠난 영적인 여행으로 남았다. 

*** 맨부커상(Man Booker Prize for Fiction)은 영국에서 출판된 영어 소설을 대상으로 그 해 최고 소설을 가려내는 영국의 문학상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