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 영화의 맛은 없었다

Tree Days 2021. 1. 22. 20:00

임상수 감독의 <돈의 맛>은 한국 재벌가의 비리를 고발한 2012년 영화다. 그러나 의도한 바는 다르게 영화는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이야기 전개가 꼭 진부한 계몽소설 풍이라서 그렇다.

그런 점에서 <돈의 맛>은 도덕 교과서 같다. 두 시간 동안 이 영화를 보고 앉아 있기에는 감독의 설교가 너무 지루하다. 

더욱이 이 영화는 대한민국 재벌들의 온갖 비리를 백씨 재벌가에 다 쑤셔 넣었다. 백 씨 재벌가가 저지른 비리는 성상납, 정경유착, 불륜, 편법상속, 뇌물수수 등 끝없이 이어진다.

원래 비리의 속성이야 엮고 엮이는 것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백과사전식 나열은 설득력이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물론 현실에서 정치권이나 재벌가의 핸태를 보면 백씨 재벌가를 넘어서는 일도 흔하다. 그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영화도 있는 것이려니 생각할 뿐이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한국 재벌들의 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떤 영화가 재벌 비리를 고발하려면 그럴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돈의 맛>에는 그런 '이야기의 맛'이 없다.

이 영화에서 백씨 재벌가는 우리 사회의 재벌가를 추상적으로만 총칭할 뿐, 구체적인 개별성은 발견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플롯도 정신이 없다. 

백씨 재벌가의 사위가 된 윤 회장(백윤식)의 인생도 그렇고, 백씨 재벌가에 집사로 들어간 영작(김강우)의 인생도 그렇다. 이들은 이유도 없이, 뜬금없이 개과천선한다. 여간 웃기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돈의 맛>의 백미는 백여사(윤여정)의 딸 나미(김표진)다. 그녀도 나중에는 천사가 된다. 기막힌 설정이다. 배우 백윤식과 윤여정, 모두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다. 좋아하는 배우들이 이렇게 망가지는 영화를 보는 것은 괴롭다.

백여사와 영작의 섹스 장면은 그림이 역겹다. 윤여정은 나이들어서도 과감한 베드신을 위해 연기자로서 일대 모험을 했지만 얻은 것이 별로 없었다. 김강우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지 윤리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은 아니다. 예술적인 영상을 보러 극장에 가는 것이지 직접적인 역겨움을 체험하러 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기에 <돈의 맛>에서 영화의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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