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의 편지>는 행복한 삶을 사는데 정신분석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동일시’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한 책이다.
저자 김서영은 각 장마다 프로이트의 편지들을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이론을 평이하게 설명했다. 특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 살인사건들과 세월호와 같은 현재형 사건들을 다룸으로써 정신분석을 학문으로서보다 치유의 기능에 초점을 맞춰 설명했다.
정신분석의 기초개념은 프로이트의 ‘이드’와 ‘자아’, ‘초자아’이다. 프로이트는 제어되지 않은 충동의 에너지로 가득 찬, 혼돈 그 자체인 영역을 이드라 불렀다.
쾌락에 의해 지배되는 이드가 세상을 만나며 그 표면이 자아로 조직된다. 이드가 충동이라는 혼돈이 존재하는 비조직화된 영역이라면, 자아는 이드의 외면이 외부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사회화된 표피를 지칭한다.
즉 자아란 세상의 이미지가 내부로 동화되어 각인되는 영역이다. 통제되지 않던 이드 위에 특정 대상에게 에너지를 전달하고 그에 대해 응답받으며 서사의 길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반면, 초자아는 이드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금지한다. 자아가 타협을 통해 이드의 혼란을 수습하려 했다면 초자아는 규제하고 통제함으로써 자아를 돕는다.
<프로이트의 편지>(김서영, 아카넷, 2017)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는 초자아에게 어떤 것도 감출 수 없다고 한다. 초자아는 이드의 충동을 자아보다 더욱 더 잘 알고 있으며 호시탐탐 자아를 처벌할 기회를 노린다.
때로 초자아의 가혹함은 자아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편지>는 성숙한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산다고 말한다. 성숙이란 자아가 이 두 영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지배당하지 않고 자아의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다.
우리는 자아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할까? 프로이트는 충동적 이드와 가학적 초자아 사이에서 자아의 홀로서기를 돕는 주된 동력이 에로스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아무것도 없던 곳에 사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동일시 또는 감정적 유대라 불렀다. 자아 속에 새로운 형상과 새로운 이야기를 담으려면 우리는 ‘자아의 틈’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저자 김서영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완벽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 아이를 완벽하게 키우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은 궁극적으로 아이에게 해가 된다. 삶이 항상 안전하고 통제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모의 욕심이 아이를 망친 사례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프로이트의 편지들은 한 사람이 성숙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과정에 대한 서사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더라면 아이들에게 더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 같다.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진정한 어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저자의 이 말은 우리 사회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어른의 모습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 강박 또한 저자 자신의 초자아의 명령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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