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차, 팜므파탈과 피해자 사이에서

NeoTrois 2020. 1. 23. 20:00

영화 <화차>는 여성 감독 변영주가 연출했다. 일본 문학계에서 '미스터리의 여왕'으로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원작소설보다 이야기 구성이 좋다.

영화 <화차>는 약혼남 문호(이선균 분)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약혼녀가 사라졌는데도, 약혼남이 별다른 이유 없이 약혼녀를 끝까지 찾지 않고 중도에 단념해버린다는 원작의 설정은 설득력이 없었다. 

오랫동안 독립영화 감독으로 활동했던 변영주는 <밀애>(2002)로 상업영화 신고식을 치뤘다. <밀애>는 언제봐도 그 느낌이 좋았다.

변영주는 2012년 충무로 영화감독 40인과 함께 '공정보도를 위한 싸움에 나선 MBC 노조원들의 파업‘ 지지를 선언하는 대열에 동참하기도 했다.

변영주 감독은 <화차>에서 사라진 약혼녀 선영(김민희 분)을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억압받은 인간으로 포지셔닝했다. 사채의 덫에 걸린 선영이 살아남기 위해 타자의 이름과 신분으로 신원을 완전하게 세탁해야만했던 절박함을 묘사했다.

변영주 감독은 장르적 재미를 위해 선영에게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그러나 <화차>는 미스터리 영화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멜로적이다. 그래서 긴박감이나 스릴을 느낄 수 없다. 그렇다고 <화차>를 서사의 힘을 가진 영화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선영의 딱한 처지에 연민을 느낄 관객도, 선영의 끔찍한 신원세탁과정에 공포를 느낄 관객도 별로 없을 것이다. 문호 역을 맡은 이선균의 고함소리들만 기억에 남는다. 그 고함들도 기억하기 싫은 소음으로.

김민희의 연기 내공도 팜므파탈과 억압받은 여성 역을 오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선영의 실체를 쫓는 형사 역의 조성하의 연기도 밋밋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화차>는 드라마와 스릴러 사이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신원세탁’이 신선한 소재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자체만으로는 스릴과 연민을 동시에 만족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물론, 개봉 당시 탄탄한 내러티브, 배우들의 연기, 치밀한 연출 등 3박자를 갖춘 작품이라 호평하는 매체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누적 관객수 243만명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차라리 어느 한 쪽으로 집중했더라면 흥행에는 더 좋았을 법했다.

관객들은 단순하게 물을 뿐이다. 선영, 당신은 팜므파탈이냐? 피해자냐? 그래야 감정배분이 쉽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