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 & 데이>(개봉 : 2010. 6. 24)는 정말 재밌는 영화다. 액션과 로맨틱 코미디가 기가 막히게 균형을 이뤘다. 카메론 디아즈와 톰 크루즈의 연기 앙상블도 환상적이다.
‘첫눈에 반한 사랑’이 오히려 이성적인 판단으로 상대를 고른 사랑보다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말이 있다.
영화 <나잇 & 데이>에서 준(카메론 디아즈)과 로이 밀러(톰 크루즈)는 그런 속설을 증명한다.
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위치타 공항에서 보스턴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준은 로이 밀러를 ‘우연히’ 두 번 부딪힌다.
로이는 비행기에 동석한 준에게 “여행지의 고급 호텔에서 낯선 사람과 키스”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로이는 기막힌 순발력으로 짐칸에서 떨어지는 그녀의 가방을 잽싸게 잡아준다. 여성들은 얼토당토않은 말에도 뿅 가고, 대수롭지 않은 순발력에도 얼굴이 빨개지며 감탄한다.
준이 화장실에서 야릇한 상상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라!
준은 그와 우연히 부딪힌 것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낯선 사람과 키스하는 것이 꿈이라는 말에 로이가 더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급기야 준은 화장실에서 브래지어를 정리하며 “한번 들이대 보는 거야!”라고 외치며 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만다.
준이 화장실에서 원초적 본능의 뇌에 지배당하고 있을 때, 로이 역시 파충류 뇌의 충동에 따라 현란한 액션으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남김없이 정리(?)해 버린다.
이는 준은 못보고 관객들만 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이 장면에서 캐머런 디아즈는 로맨틱 걸의 화신으로, 톰 크루즈는 액션 터프 가이로서 정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다짜고짜 톰 크루즈에게 키스를 퍼붓는 캐머런 디아즈의 대담성은 로맨스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저 남자, 보면 볼수록 딱 내 취향인데~ 어쭈 날 바라보는 저 그윽한 눈빛 좀 봐봐, 내게 홀라당 빠진 거 같지 않아? 이런 남잔 무조건 들이대야 겠지?
<나잇 & 데이>에서 로이 밀러로 말하자면, 인류의 미래가 걸린 에너지원을 개발한 어린 과학자 사이먼을 보호하는 중차대한 과업을 수행 중인 몸이다.
그것도 조직으로부터 에너지원을 팔아넘기려한다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고 쫒기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명에 충실한 남자다.
아주 위험한 순간마다 로이는 준에게 약을 먹인다. 준은 언제나 다음날 아침 잠옷 또는 비키니 차림으로 몽롱하게 깨어난다.
준은 생각한다. 위험한 매순간마다 백마 탄 왕자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는 이 남자는 진정 꿈이란 말인가?
장자의 나비 꿈처럼 현실과 낭만이 어지럽게 뒤섞인 존은 로이의 정체와 진정성을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그에게 빠져들고 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남자가 과연 날 사랑하기는 사랑하는 걸까?
<나잇 & 데이>의 압권은 무기밀매상의 호화로운 대저택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 존이 내뱉는 한 마디다.
“로~이~! 섹스가 급 땡겨요~”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난국을 돌파해 나가려는데 여자는 섹스가 급 땡긴다는 타령을 하고 있다.
그렇다. 여자들은 일에 열중하는 남성을 보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흥분이 급상승한다. 그 흥분은 총알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제어되지 않는다.
로이 밀러는 준의 "이 남자 넘 멋지다!" 한마디에 총알이 날아오든 말든 총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진한 키스를 퍼붓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남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나랑 있으면 이만큼 살고, 나랑 떨어지면 요만큼 살아요.”
- 로이가 준에게 심심하면 혹은 급박할 때면 늘 하는 말.
이쯤에서 로이와 준의 로맨틱 어드벤처를 한번 검토해 보자. 로이는 과연 얄팍한 술수로 준을 꼬드긴 것일까. 준은 수컷의 그 속임수에 넘어가 야수의 뇌에 지배당한 것일까.
진화론자들은 인간과 다른 포유류가 두려움, 혐오, 배고픔, 분노 등을 표현할 때 비슷한 표정과 몸짓을 보인다고 말했다.
인간은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파충류 뇌와 포유류 뇌를 버리지 못하고 그 위에 새로운 층을 더했다고 한다.
그들에 의하면 이 파충류의 뇌가 작동할 때, 인간은 대뇌피질이 아닌, 원초적 본능에 자극되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탐욕과 공포, 충동에 지배당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여성이 곤히 잠든 사이에 아침으로 오믈렛과 주스를 정성들여 차려놓고는 쪽지까지 남기는 남자는 가장된 백기사(knight)일까?
당신이 깨어날 때 마다, 풍광 좋은 알프스를 달리는 기차 안이거나 절경이 펼쳐진 무인도, 혹은 잘츠부르크의 호텔 스위트룸이라면 당신의 기분은 어떨까?
로이는 저 모든 일들을 군소리하나 없이 헌신적으로 해냈다. 오직 준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로이의 그 모든 배려가 여자를 꼬드기기 위한 가장(假裝)으로 몰아붙이기에는 지나치다.
더욱이 로이는 총알이 비 오듯 퍼붓는 순간에도 준을 위해 기꺼이 키스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준은 첫 눈에 어떻게 로이를 알아 봤을까?
운명적인 사랑을 믿든 안 믿든, 인간은 원초적인 영역에서는 대뇌피질이 내리는 이성적 판단보다 파충류 뇌가 내리는 야성적 충동이 놀랍도록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또 그렇다면 로이가 준에게 애타게 "나랑 있으면 이만큼 살고, 나랑 떨어지면 요만큼 살아요.”라고 말했던 것은 로이의 원초적 본능의 외침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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