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성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의뢰인>(2011)은 이야기 속으로 관객들을 끌고 들어가는 힘이 좋은 스릴러물입니다.
상투적 소재이지만,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시나리오와 풍부한 캐릭터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로 볼 수 있습니다.
<의뢰인>의 사건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대충 이렇습니다. 한철민(장혁)의 아내가 침대 시트에 흥건한 피를 남겨둔 채 사라지자 경찰은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을 용의자로 현장 체포합니다.
사건 현장에는 지문이나 사건의 단서가 될 만한 아무런 증거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제3자가 침입한 흔적이 없다면,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 경찰의 행위는 당연해 보입니다.
변호사 강성희(하정우)는 아내의 살해 용의자로 한철민을 의심하면서도 사건을 맡습니다. 구치소에 수감된 한철민이 자살을 시도하고, 사건 당일 CCTV 자료가 검찰에 의해 빼돌려졌다는 정황들을 알게 되면서 강성희 변호사는 사건 해결에 구미가 당기기 시작합니다.
시나리오상의 치명적인 몇몇 오류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하는 강변호사의 열망이 관객들에게 전이됩니다.
강변호사가 보기에, 이 사건은 정황증거만 제시되었을뿐, 한철민이 범인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고, 더구나 검찰의 수사는 무엇인가 진실을 은폐하려는 기획수사의 냄새가 풀풀 납니다.
관객들은 안민호(박희순) 검사가 제시하는 정황증거들과 강성희 변호사가 감성적으로 반박하는 자료들 사이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나름대로 유추하기 시작합니다.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은 치열해지고 제출되는 증거들도 밀도를 높혀갑니다.
자신은 아직도 아내가 죽지 않았다는 한철민의 눈물어린 법정 증언을 듣고 나면 무엇이 사건의 진실인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관객들은 몇 번의 반전을 통해 한철민이 범인이다, 아니다를 몇 번이나 되풀이합니다. 반전이 거듭될수록 영화적 재미는 점증합니다.
사실 이런 류의 스릴러물을 많이 본 관객들은 첫장면부터 진범을 알아챌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 말입니다. <의뢰인>은 존 그리샴의 <의뢰인>이나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2011)의 추리 스릴러물들의 프레임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집중합니다. 그것은 상당부분 배우들의 호연에 기대는 바가 큽니다.
변호사 역을 맡은 하정우의 연기는 발군입니다. 그의 표정에서, 그의 말투에서, 하정우는 이 시대의 변호사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정의감'을 연기했습니다.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하정우의 강렬한 욕망을 관객들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검사 역을 맡은 배우 박희순의 연기도 검찰보다 더 검찰다운 연기를 선보입니다. 남편 역을 맡은 장혁의 절제된 연기도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는데 한 몫했습니다.
결국 주연배우들의 불꽃튀는 연기대결로 흡인력을 발산했던 영화로 기억됩니다.
영화는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인 CCTV 자료를 왜 검찰이 은폐하려고 했는지, 한철민이 왜 강성희를 변호사로 선택했는지, 한철민의 집을 감청하고서도 사건 당일의 상황을 검찰은 왜 몰랐던가 하는 이유들은 생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나리오 상의 맹점들을 배우들의 호연으로 잘 메꾼 영화가 <의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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