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 '다우트' 의심과 확신, 그리고 진실과 거짓말에 대하여

NeoTrois 2019. 9. 18. 15:22

의심과 확신, 그리고 진실과 거짓말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영화 <다우트>는 진보적인 플린 신부가 흑인소년의 팬티를 몰래 사물함에 넣는 것을 알로이시스 수녀가 보게 되면서 시작된다.

1964년 브롱크스 지역의 성 니콜라스 교구 학교를 배경으로 하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아주 사소한 일들이 각자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다우트>는 섬세하게 그렸다.

영화에서 플린 신부(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는 충분히 게이일수도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신부로서는 지나치게 활달하고 자유롭다. 주위 사람들이 그런 그를 보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반면 알로이시스 수녀(메릴 스트립)는 엄격한 원칙주의자의 화신이다. 그녀의 눈은 의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플린 신부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는다.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의 불꽃 튀는 대결에 맹한 제임스 수녀(에이미 애덤스)가 끼어들게 되면서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물론 사건의 키는 흑인소년 도널드 밀러(조셉 포스터)가 쥐고 있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하여 도널드 밀러의 어머니 밀러 부인(비올라 데이비스)을 교장실로 부른다.

이제 사건은 3파전으로 접어드는 양상을 띤다. 밀러 부인은 진실이 무엇이든지간에 아들이 무사하게 졸업할 수 있도록 남의 사생활에 참견하지 말라고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정곡을 찌른다. 여기서 알로이시스 수녀는 1패를 당한다.

밀러 부인 역을 맡은 비올라 데이비스 연기는 1960년대 중반의 엄마만이 가질 수 있는 모성을 성공적으로 표현했다. 비평가들이 “메릴 스트립으로부터 10분을 훔쳐냈다”라고 찬사를 보냈다.

영화는 이들 네 배우들의 의심과 확신, 진실과 거짓말 사이를 숨가쁘게 오가며 제2라운드가 시작된다.

알로이시스 수녀는 플린 신부를 넉다운 시킬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플린 신부의 과거를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자 플린 신부는 격앙된 목소리로 “사적인 문제는 이미 신에게 고해성사를 마쳤기 때문에 해명할 필요가 없다.”고 외친다.

여기서 플린 신부의 모습은 <체인질링>의 노스콧의 얼굴과 중첩되기도 한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과연 그 누구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플린 신부를 격침시키고 알로이시스 수녀의 손을 들어준다. 이제 플린 신부와 알로이시스 수녀는 1승1패를 각각 주고받았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각각 오인하고 있는 팽팽한 상황에 관객들을 더 깊이 끌어들이며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강요한다.

<다우트>의 외양은 종교영화이지만 결코 종교나 신앙을 걸고넘어지지 않았다. 제목처럼 “의혹”에 관한 영화도 아니다.

영화 <다우트>에서 등장인물들이 대결하는 의심과 확신, 진실과 거짓말은 그리 중요한 술어들이 아니다. 그것은 형용사일 뿐이다. 오히려 인간 본질과 인간 조건을 탐구한 영화라고 봐야한다.

플린 신부와 흑인소년이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알로이시스 수녀의 정책(policy)이 정당한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이런 논의에서는 제임스 수녀도 플린 신부도 자유로울 수 없다.알로이시스 수녀가 진실과 대면하는 순간은 인간존엄과 만나는 순간이다. 

인간 존엄의 영역에 들어 설 때는 모든 개인적인 정책들은 폐기되어야 한다. 우리들 존재인 '인간'을 그 무엇으로 재단하고 구속할 수 있을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한다.

밀러부인이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쏟아낸 대사들은 바로 이러한 관념의 중심에 깊숙이 파고드는 핵심 용어들이다. 인간존엄은 깃털과도 같이 부드럽게 우리 주위를 언제나 맴돌고 있다. 단지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아쉽게도 <다우트>는 이 궁극의 지점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연기 절정에 오른 네명의 배우들은 제81회 아카데미 주연과 조연 부문에 모두 이름을 올리는 진기록을 세웠지만, 오스카는 그들을 모두 비켜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