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렛 미 인, 뱀파이어 소녀의 동화 같은 사랑

NeoTrois 2019. 7. 15. 10:26

영화 <렛 미 인>(2008)은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와 12살 소년 오스칼의 사랑을 스웨덴의 차가운 설경을 배경으로 적막한 회색빛으로 풀었다.

핏기 없는 오스칼의 금발과 이엘리의 검은 머리숱은 이들이 처한 사랑의 조건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뱀파이어 영화의 전통적인 장르규칙들이 고스란히 담긴 <렛 미 인>은 그러나, 한편의 동화로 읽힌다.

나무를 칼로 찌르며, 친구들에게 당한 설움을 나무에다 복수하는 오스칼. 그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아이다. 친구로부터는 끊임없는 왕따를, 엄마는 아들에게 관심이 없고, 게이 아빠는 별거 중이다. 그런 오스칼에게 이엘리가 묻는다.

"내가 평범한 소녀가 아니어도 괜찮니?"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은 장르관습들을 영화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이엘리가 얼마나 오스칼을 사랑하는지를 증명하는데 오롯이 집중함으로써 진부한 뱀파이어의 성적 판타지를 극복하고 불멸의 사랑 이야기를 한다.

 

초대받지 않고 인간의 방에 들어가면 온 몸의 구멍에서 피가 솟구치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엘리는 사랑하는 오스칼을 위하여 자기 존재방식마저도 내 던진다.

 

자기 존재를 무너뜨리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녀의 절박함을 보라.

오스칼을 향한 이엘리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어쩔 수 없이 뱀파이어의 존재규칙과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오스칼이 준 사탕을 먹고 고통스럽게 토해내는 이엘리. 뱀파이어들은 음식을 먹을 필요도, 숨을 쉴 필요도 없다. 음식을 먹게 되면 고통스럽게 토해내야 한다.

뱀파이어가 되면서 모든 생체활동이 정체된 이엘리는 오스칼과 같은 12살이다. 오스칼을 온전히 보듬으려는 이엘리의 눈물겨운 사랑은 존재 그 자체의 장벽에 한없이 부딪친다.

둘의 사랑은 밝은 빛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어둠의 사랑이다.

 

오스칼과 이엘리가 놀이삼아 하는 루빅스 큐브처럼 세상이라는 퍼즐을 어렵게 맞추어가야 하고, 벽 사이로 모스 부호를 주고받으며 세상의 그물사이로 비밀스럽게 대화해야 하는 그들이다.

뱀파이어가 깊은 상처를 입으면, 깊이 잠드는 토퍼(Torpor)상태에(길게는 수세기 동안) 빠지게 된다. 영화 <렛 미 인>은 오스칼이 이엘리가 숨어 들은 궤짝에 모스부호를 주고받으며 기차여행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세상 그 어디선가 한 줄기 속삭임이 모스부호처럼 들린다.
"제발 우리들을 세상 안으로 들여 보내줘"

<렛 미 인>은 스웨덴 작가 욘 린퀴비스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했다. 스웨덴 예테보리영화제 등 전 세계 9개 영화제에서 13개의 감독,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