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에버트의 <위대한 영화>(전 2권)는 영화와 비평이 만나는 행복한 풍경으로 가득찬 책입니다.
로저 에버트는 이 책을 통해 영화를 보는 안목과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영화를 분석하는 저자의 심미안과 통찰력이 빚어낸 간결한 아름다움이 넘치는 문장들은 그대로 영화가 되었습니다.
시카고대학과 일리노이대학에서 영화를 강의했던 로저 에버트는 수십 년간 <시카고 선 타임즈>의 전속 영하평론가로 몸 담았고, <시스켈과 에버트>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트레이드 마크가 된 'Thumb Up or Down'으로 영화 비평계의 지평을 대중적으로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위대한 영화> 는 에버트가 엄선한 고금의 걸작 200편을 싣고 있습니다. 물론 <위대한 영화>에 실린 200편의 영화가 저자도 말했지만, 영화역사상 최고의 걸작 200편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첫 1세기 동안 탄생한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두루 살펴보고 싶다면, 이 책에서 출발하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로저 에버트는 옛날 영화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요즘 학생들이나 관객들의 세태를 걱정합니다. 에버트가 보기에 요즈음 영화들은 관객들을 영화의 내러티브 속으로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상실하였고, 관객들은 철학인 담긴 영화들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인내심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러한 영화적 세태는 로저 에버트로 하여금 영화 관객들에게 미개척지로 남아 있는 영화사의 걸작들을 되돌아보는 긴 리뷰 시리즈를 시작하게 하였습니다.
연예인 소식, 박스오피스 결과 분석, 기타 저급한 기사들만 다루던 당시(1997년) 미국의 영화 저널리즘 속에서도 에버트의 고전영화 평론들은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위대한 영화>를 보고서 저 또한 에버트의 리스트에 오른 영화를 모두 보겠다는 다짐을 한 적이 있었고, '숏 바이 숏' 분석의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에버트의 영화들을 다 보기도 전에 <위대한 영화>에는 한국 영화가 단 한 편도 소개되지 않았다는 불평을 핑계로 <위대한 영화>들은 세사에서 묻혀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다시 로저 에버트의 책을 펴 듭니다. 언제 봐도 그의 문장들은 영화만큼이나 사람을 끌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로저 에버트의 글을 읽으면 그가 얼마나 영화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시 에버트와 함께 영화 여행을 하고 싶어집니다. 로저 에버트는 어쩌면 영화 고고학자입니다. 에버트의 빛나는 문장으로 되살아난 고전들을 다시 챙겨보고 싶습니다.
<위대한 영화>를 일별하고 나면, 영화배우들의 목소리들이 생생하게 들려오면서 위대한 영화감독들과 아마도 친구가 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단편들을 통해 영화사 전체를 꿰어볼 수 있는 안목도 덤으로 생겨날 것입니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깊은 층위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영화를 사랑하시는 분이라면, <위대한 영화>를 만나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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