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씨 표류기> 두 남여의 고립 탈출기

NeoTrois 2018. 12. 22. 00:00

영화 <김씨 표류기>(2009. 5. 14)는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립에 대한 은유로 빛나는 소박한 영화입니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이니 세상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 김씨(정재영)는 빚 독촉에 시달리고 여자 친구에게 차입니다. 회사마저 그를 해고해 버립니다. 김씨는 자신이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이 세상의 배타성에 몸부림칩니다.

 

김씨는 자살을 결심하고 한강으로 뛰어듭니다. 그러나 한강은 김씨를 받아 주지 않고 무인도 '밤섬'으로 뱉어내 버립니다. 죽음마저도 김씨는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처지랄까요?

 

▲ 밤섬에서 김씨를 살려 낸 자장면. 김씨에게 자장면은 삶에의 강한 욕망의 상징으로 작동합니다. 김씨에게 욕망이 없으면 삶 또한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이후 인류의 진화사를 떠올리게 하는 김씨의 생존기가 밤섬에서 펼쳐집니다. 인류는 처음에 채집활동과 사냥으로 연명했다지요. 그러다 농경생활을 시작했겠지요.

 

김씨 또한 밤섬에서 샐비어 꽃잎과 버섯을 양식으로 삼아 생존을 시작합니다.

 

영화 <김씨 표류기>는 무엇보다 배우 정재영에게 기대는 바가 참으로 컸습니다. 밤섬에서의 지루하고 단조로운 1인 생존기를 정재영은 오롯이 혼자서 대사를 주고받으며 맛있게 소화했습니다.

 

“진화는 어쩌면 맛있어지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그의 대사처럼 이 영화에서 정재영의 연기는 진화를 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극중 김씨가 카페라테 뚜껑을 가지고 멋진 선글라스를 만들어내는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듯이.

 

▲ 김씨가 밤섬에서 생존을 위해 홀로 악전고투를 하고 있을 때, 그를 지켜보는 또 다른 김씨가 있었습니다.

여자 김씨(정려원)는 흔히 말하는 히끼꼬모리입니다. 대인기피로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여자 김씨는 밤을 지새우며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하고 인터넷을 하는 것이 생활의 전부입니다.

 

그러다 여자 김씨는 우연히 밤섬에서 홀로 기거하고 있는 남자 김씨를 발견합니다.

 

남자 김씨가 백사장에 써 놓은 ‘HELP’를 외계 생명체의 절박한 구조 요청으로 오인한 여자 김씨가 드디어 방 밖으로의 외출을 감행합니다.

 

<김씨 표류기>에서 두 김씨의 공통점은 현실과 동떨어진 고립된 세계에 갇혀 산다는 것입니다.

 

두 김씨가 어쩔 수 없이 ‘밤섬’과 ‘방’을 스스로 선택한 듯이 보이지만, 영화는 그들이 처한 처지를 십분 공감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합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두 김씨처럼 자신이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다는 단절감과 함께 현실도피를 꿈꾸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남자 김씨가 밤섬에서 구축한 세계는 현대인들의 마음 한 구석에서 자라고 있는 유토피아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유토피아가 그렇듯이 밤섬의 유토피아도 한 순간의 태풍으로 날아가 버리고 남자 김씨는 밤섬에서 (구조가 아닌) 축출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남자 김씨는 밤섬에서의 성취기억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여자 김씨 또한 오랫동안 남자 김씨를 지켜본 기억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두 김씨는 차가운 현실의 맨땅에서도 그 기억을 갖고서 서로에게 용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김씨 표류기>의 희망입니다. 서울을 가로지는 한강에서 한 남자가 표류하고 있을 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여자 김씨에게도 아무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김씨는 영화가 끝날 때쯤 딱 한 번 만나지만 그 만남은 세상의 그 어떤 만남 못지않게 인간적 공명을 울립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두 김씨에게 박수를 보내고 자신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표류하는 현대인들에게 치유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영화로 기억에 남습니다.

 

세상은 어째든 살아가야 하고, 또 누군가 지켜보고 있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