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기술적 분석가 혹은 차티스트들의 계보

NeoTrois 2019. 9. 14. 19:22

첫 번째 차티스트들은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유명한 주식시장 이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우와 <월스트리트 저널>의 편진인으로 <다우>를 승계한 윌리엄 해밀턴이다. 다우의 유명한 격언은 "평균이 모든 것을 나타낸다."이다.

찰스 다우는 다우존스 산업지수와 철도지수 평균 가격이 경제와 주식시장에 관한 모든 지식과 희망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책을 쓰지 않고 <월스트리트 저널>의 사설만을 썼다.

해밀턴은 다우가 죽은 이후 그의 일을 물려받았고, 1929년의 대폭락 이후에 쓴 <추세의 반전>(The turn of The Tide)이라는 사설을 통해 차트 분석에 관한 바람을 일으켰다.

해밀턴은 자신의 책 <주식시장 바로미터>(Stock Market Barometers)를 통해 다우 이론의  원칙을 정립했다.

뉴스레터 발간인, 로버트 레아는 1932년에 <다우이론>(The Dow Theory)이라는 책을 써서 다우 이론을 정점에 올려 놓았다.

1930년대는 차트의 황금기였다. 많은 혁신가들이 1929년의 대폭락 이래로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시대를 만들었다.
샤베이커, 레아, 엘리엇, 이코프, 갠, 그리고 일군의 차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연구를 발표했다.

그들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샤베이커, 위코프 같은 사람들은 차트를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기록으로 보았다. 엘리엇과 갠은 시장에서의 절대적인 원리를 찾았다.

1948년에 샤베이커의 사위인 에드워즈와 매지는 <주가 추세에 관한 기술적 분석>(Technical Analysis of Stock Trends)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들은 추세선이나 지지 저항, 머리어깨형, 삼각형, 사각형 등의 패턴에 관한 개념들을 발표했다. 다른 차트 분석가들은 이런 개념들을 상품 시장에 적용했다.

시장은 에드워즈와 매지 이래로 많이 변했다. 1940년대에 뉴욕 주식거래소의 일간 주식 거래량은 몇백 주에 불과했으나 1990년대에는 몇백만 주를 능가하고 있다.

주식시장 균형의 힘은 강세로 옮겨 졌다.

초기의 차트분석가들은 주식시장의 고점은 뾰족하고 빠르게, 저점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된다고 기술했다.

이 이론은 디플레 시기에는 맞았으나 1950년대 이래는 맞지 않았다. 지금은 저점이 빨리 형성되고 고점은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출처 : 알렉산더 엘더 / 정인지, <주식시장에서 살아남는 심리 투자 법칙>, 국일증권경제연구소, 2004년. pp. 148~149.

알렉산더는 이 책에서 기술적 분석의 역사에 대한 간결한 약사(Brief History)를 소개했다. 그는 기술적 분석은 집단 심리에 대한 연구이자, 과학이면서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각각의 가격은 모든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으로 표현된 가치에 대한 일시적인 합의로, 각각의 봉은 매수와 매도 간의 힘의 균형에 대한 몇 가지 조각 정보를 제공한다고 한다.

기술적 분석의 시조 찰스 다우(Charles Dow)는?

다우는 미국 코네티컷의 가난한 농가에서 1851년 11월6일 태어났다. 고교를 중퇴하고 기자로 일하게 된 18세 이전까지 20여개 직업을 거쳤다.

기자로 일하면서 철도회사와 증기선업체, 범선해운업자간 갈등을 소개하고 금ㆍ은 광산 현지 취재로 명성을 얻었다.

1982년 동료기자 에디 존스와 금융인 출신의 찰스 밀포드와 함께 증권 전문지 <애프너눈 뉴스레터>를 창간했고, 1896년 핵심 철도주 11개 종목의 평균 주가인 다우지수를 개발하고 제호를 <월스트리트저널>로 바꾸었다.

1902년 사망하기까지 13년간 월스트리트저널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발표한 경기변동분석은 후대 기술적 분석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