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착한 소비의 새로운 경제문법

NeoTrois 2019. 1. 18. 07:52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은 탐욕으로 얼룩진 99 대 1의 양극화 현상을 비판하고 착한 소비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문법을 제안합니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의 기원은 '아담의 오류(Adam's Fallacy)'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담의 오류'의 핵심은 자본주의 사회는 그 자체로 윤리적이라는 주장으로, 경제 주체의 이기적 행동에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지요.

 

1979년 집권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수상, 1980년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경쟁과 생산성 향상을 지고의 가치로 삼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확장하고 강화했습니다.

시장 만능주의는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정점을 이루며 개발도상국을 비롯, 전세계로 전파되었습니다.

 

'정부 지출의 삭감, 정부 규제의 축소, 시장 자유화, 외환시장 개방, 국유산업 민영화, 재산권 보호 등 '시장 기능 신뢰'와 '대외 경제활동 개방'으로 압축되는 것이 워싱턴 컨센서스의 주요내용입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IMF'라는 옷을 입고 1997년 한국에도 상륙했지요. 이후 한국 사회는 비정규직과 영세 자영업자를 양산하며 99 대 1이라는 양극화라는 세계 흐름에 빠르게 빨려들어갔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이원재, 어크로스, 2012)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저자 이원재는 프롤로그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이 100명의 마을이라면, 안정적인 상장 제조업에 다니는 정규직은 단 1명 뿐이라고 한다! 100명 가운데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59명인데, 28명은 정규직으로 취업해 살고 있고, 14명은 비정규직이며 자영업자가 17명이라는 이야기다.

 

정규직 28명 중에서 제조업 559개 기업에 다니는 정규직은 단 1명이고, 매출액 상위 2000개 기업에 일하는 사람으로 넓혀 봐도, 3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모두 한국 대기업을 응원했습니다. 정부는 수출 대기업을 돕는 정책을 수십 년 동안 써왔고, 소비자도 이 나라 기업의 제품이라면 달려가서 먼저 사줬습니다.

 

그 1등 기업들은 우리가 잘 되어야 마을 전체가 잘 살게 된다고 끊임없이 외쳤습니다. 정부와 경제학자, 주류 언론들이 맞장구를 쳤음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너무 믿었기 때문입니다.

 

'워싱턴 컨센서스'로 압축되는 자유시장 경제체제는 필연적으로 이윤 극대화를 위해 끝없는 탐욕을 부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글로벌 기업일수록 냉혹한 경쟁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윤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나 비정규직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결국 노동자들의 눈물과 땀으로 생산한 그 과실을 소수의 주주들이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세계가 주주자본주의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자유시장체제가 잉태한 끝없는 탐욕이 금융위기를 불러왔고 기후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경제위기를 불러오고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체제는 지속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1등만이 성공하는 세상은 계속될 수 없다는 저자는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격언을 빌어, 인간의 선의와 신뢰에 기댄 경제에서 그 희망을 찾습니다.

경제는 영원히 고성장을 거듭할 수는 없으며, 이제 탈성장 시대의 경제 문법을 새로이 찾아야 하라 때라는 것이지요. 

 

새로운 경제 동력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이미 현실에서 그 싹을 틔우고 있다고 저자는 희망합니다.

 

"그 싹은 앞서 말한 인간의 이타심에 기반한 착한 소비, 이윤 극대화가 목적이 아닌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이다. 함께 만든 경제가 멀리 간다는 것이다."

이원재의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을 읽고, 저자의 제안에 따라 우선 '착한 소비'를 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아동을 착취하여 생산한 제품들, 환경파괴를 유발하는 제품들을 사지 않고, 나아가 지역사회가 생산하고 판매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착한 소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