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 순진한 깡패와 아가씨의 슬픈 로맨스

NeoTrois 2019. 12. 29. 11:38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은 고작 8억원이라는 제작비로 옆방 사는 깡패와 순진한 아가씨의 로맨스를 스토리텔링의 힘으로 밀어붙여 오늘을 사는 청춘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지방대학에서 석사를 딴 세진(정유미)은 서울에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했으나, 다니던 회사가 부도난다. 세진은 반지하 셋방으로 이사를 가는 처지가 된다. 서울이란 넓은 곳에서 그녀가 찾아 들어간 반지하방 옆방에는 하필이면 깡패가 산다.

딸 가진 부모라면 근심하게 될 상황에 세진이 처한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걱정한 대로 세진은 이상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오동철(박중훈)은 세진이 옆방으로 이사 온 첫날부터 그녀에게 깡패근성을 맘껏 보여주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세진과 관객들이 깡패 동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감독은 세진이 동철에 대하여 모르는 정보를 관객들에게 넌지시 던져 준다. 

동철은 조직의 ‘에이스’가 될 거라는 희망으로 보스 대신 교도소에 갔다 온다. 그러나 출소 후에도 여전히 2인자 밑에서 뒤치다꺼리나 하는 신세다. 

룸살롱에 정리하러갔다가 합기도 사범들에게 쥐어터지고, 전직경찰을 담그러 갔다가 자신이 도리어 담기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일어난다. 

동철이 깡패 같은 놈이었다면 반지하 옆방의 참한 처자에게 십중팔구 노골적으로 들이댔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도 우리의 동철은 세진에게 집적대지 않는다. 

그것은 동철이 ‘깡패 같은 놈’이 아니었고 ‘깡패’였기 때문이다. 세진이 그가 하는 짓이 꼭 깡패 같다고 말하자 동철은 당당하게 ‘나 깡패야’라고 말한다. 

<내 깡패 같은 애인>(개봉 : 2010. 5. 20)

비록 추리닝을 입고 다니지만, 그 자신은 ‘가오 있는’ 깡패로 살고 있다고 철석 같이 믿는 깡패다. 똘똘하고 참한 세진이 깡패에게 빠져드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내 깡패 같은 애인>은 실화처럼 진지하게 풀어간다.

동철이 “안 되겠지?”라고 체념하듯 물었을 때, 세진의 대답 “돼요!”는 연기대사가 아닌 우리 곁의 실제 언어로 다가온다. 

동철이 영양실조로 쓰러진 세진을 들쳐 엎고 응급실로 뛰는 장면, 세진이 면접관들 앞에서 정장차림으로 손담비의 ‘토요일 밤에’를 부르는 장면들은 연기가 아니라 이 땅 어디선가 분투하고 있을 법한 청년들의 생생한 절규로 들린다. 

<내 깡패 같은 애인>의 후반부, 동철이 계단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익스트림 클로즈업 숏은 관객들의 가슴에 청년들의 자화상으로 강렬하게 남는다. 

느와르와 코미디를 오간 동철의 삶은 이 시대를 부유하는 청춘을 관통하는 비애이다. <내 깡패 같은 애인>에서 동철이 쓰러져 있는 장면에서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이 미학적 결말에 부응한다. 

그러나 감독은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다시 영사기가 돌아가며 세진의 꿈 장면과 세차 시퀀스가 나오며 결말을 열어둔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고 싶으냐고 묻듯이……. 

직장을 잃고 세상 물정 모르는 세진에게 모진 풍파로부터 그녀를 지켜줄 듬직한 사나이가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비록 깡패이지만, 깡패의 삶에 충실했던 동철을 계단에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이 감독(김광식)으로서는 미안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세진으로부터 명함을 받을 일이 남아 있지 않았던가. 매끈한 시나리오로 달린 <내 깡패 같은 애인>은 박중훈의 탄탄한 연기력과 정유미의 풋풋함에 기대어 오늘을 사는 청춘들의 아픔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