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은희경 : 소년을 위로해줘

NeoTrois 2020. 1. 9. 20:00

소설가 은희경은 영화 <참을 수 없는>(2010)를 보면서 알게 됐다. 극중 주인공 지흔(추자현)이 <소년을 위로해 줘>의 작가 은희경을 롤모델로 삼아 소설가의 꿈을 키워 나가는 장면을 보았을 때는 가상의 소설가인줄로만 알았다.

<소년을 위로해줘>(문학동네, 2010)는 작가 은희경이 5년만에 내 놓았던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우연히 레퍼 키비(kebee)의 노래 ‘소년을 위로해줘’를 듣고 열일곱 살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한다. 작가는 이루 펀트의 CD를 부록으로 붙였다.

소설의 주인공 연우는 17살 소년이다. 엄마는 이혼했고, 연우는 엄마를 ‘신민아’씨로 부른다. 한 여름에 이사한 연우는 전학 간 학교에서 미국에서 온 태수와 우연히 친구가 되고, 태수로부터 ‘G-그리핀’이라는 그룹의 노래를 듣게 되고 힙합 음악에 빠진다.

‘옷 칼럼니스트’인 ‘신민아’씨는 술에 취해 살면서도 여덟 살 연하인 재욱을 애인으로 두고 있다. 연우는 그런 엄마는 물론, 재욱과도 불평불만 없이 친구처럼 지낸다. 연우는 이사와 함께 동급생 채영을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소년을 위로해줘>(문학동네, 2010)

열일곱 살 소년 연우의 독백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비문이 많이 나와 읽기가 쉽지 않다.

십대들의 언어를 흉내 낸 듯한 짧게 끊어진 문장에 호흡을 맞추려면 어른들은 청소년을 이해하는 것보다 이 문장을 느끼는데 더 지극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작가가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장면도 그렇다. 연우가 이사한 날 창 밖에 서 있는 ‘채영’을 처음 발견하는 장면은 여고괴담 수준이다. 그 때 채영은 특별한 표정은 없었는데, 연우는 그녀가 당황하고 또 슬퍼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느꼈을까 싶다.

그 애는 푸른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에서, 흰색 후드티 앞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놓고 우두커니 내 방을 올려다보고 서 있다. 교복으로 보이는 체크무늬 스커트 아래로는 발목에서 접어 신은 흰 양말, 남색의 삼선 슬리퍼, 옷과 신발은 모두 조금쯤 커 보인다. 고개를 뒤로 젖히는 바람에 짧게 자른 앞머리 아래 이마가 하얗게 드러났다. 새처럼 작고 가벼워 보이는. 중략. 그애의 얼굴에는 특별한 표정은 없다. 하지만 왠지 당황하고 또 슬퍼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다. 무슨 일일까.(32-33쪽)

이런 식의 등장인물 소개는 뒤로도 계속 이어진다. 인물을 두고 알 수 없는 퍼즐 같다느니, 신비스럽다든지 하는 소설들은 내 취향의 범주를 벗어나 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지극 추천한 지인을 생각해 끝까지 읽었지만 여전히 주인공들은 낯설게 남아 있다. 은희경은 “이 세계는 낯선 우주고, 우리 모두는 이 낯선 우주에 던져진 존재이자 위로받아야 될 고독한 떠돌이 소년”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아마도 주인공들을 그렇게 그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무지 그런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평범했던 연우가 자기 자신의 세계를 인정하면서 자기 혁명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만 논리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 감성적인 공감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이가 많이 들었음을,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만 할 뿐, 정서적인 공감은 할 수 없는, 낯설어진 세계를 떠돌 수밖에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 자신을 자책하는 수밖에. 생각이 젊어야 청소년 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