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금관가야 유적 발굴 현장을 가다 <김해 원지리 고분군>

NeoTrois 2019. 1. 5. 18:24

김해 원지리 고분군 발굴 현장을 다녀 왔어요. 원지리 고분군은 금관가야 유일의 고총 고분군이라 발굴 성과를 현장에서 공개(2019. 1. 4. 오후 2시)하나 봐요.

 

김해 원지리 고분군은 1984년 가야문화권 유적 정밀 지표조사를 통해 그 존재가 최초로 확인되었다고 하는데요.

 

2017년에 (재)경상문화재연구원의 사전 조사 결과 원지리 고분군 중 규모가 가장 큰 3호분의 도굴의 피해가 확인되어 2017년 11월 긴급 발굴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긴급 발굴 조사에서 다행히 개, 기대편, 호편 등의 토기류 및 장신구가 출토었는데, 아마도 도굴꾼들이 다 도굴하지 못하고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행입니다.

 

긴급 발굴 조사이후 원지리 고분군의 전체적인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정밀 발굴조사를 지난 해 9월부터 현재까지 진행하여 그 성과를 현장 공개하는 자리였어요.

 

이번 정밀 조사에서 원지리 고분군은 주능선에서 총 9기의 봉분을 확인하였고, 주변으로도 소형 봉분들들이 추가로 확인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요.

 

정밀 조사의 최대 성과는 원지리 고분군이 금관가여 유일의 고충 고분임을 밝혔고, 금관가야의 마지막 단계인 6세기 전반의 역사와 문화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였다는 데 있다고 하네요.

 

자 그럼 발굴 현장으로 가 볼까요. 발굴 현장은 경남 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산 2-2번지 해발 36미터 지점에 있어요.

 

 

공개 행사를 위해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어요. 

 

 

아직도 원지리 고분군 발굴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고분군 발굴 작업은 현장에서 처음 봤는데 신기했어요~~~

 

 

이번에 중점적으로 정밀 조사한 원지리 고분군 중 규모가 가장 크나는 3호분이에요. 평면 형태 타원형의 남동쪽에 입구부가 보이는데, 6세기에 조성된 횡구식 석실분이라고 하네요.

 

 

봉분의 정상부로 올라갈수록 층의 길이가 짧아지는 형식의 성토 방식으로 성토방식을 사용하였다고 하는데요.

 

고대 금관 가야시대에는 무덤에 사람들이 왕래했나 봐요.

 

 

제일 밑에는 회갈색의 사질점토를 사용하여 성토하고, 그 위에는 암적갈색의 사용토를 성토하여 흙 색깔이 높이에 따라 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상부에는 회백색의 점질토로 밀봉하여 빗물이 들어가는 걸 막았다고 해요. 요즈음으로 치면 시멘트라고 할까요? 6세기에 벌써 이렇게 과학적인 축조 방식을 썼네요.

 

 

그리고 3호분 인근의 4호분입니다. 4호분은 가야 고분군에서 보여지는 부곽인데요, 묘광의 내부에서 고배, 유개 고배, 단경호, 장경호, 발형기대 등 다수의 토기류와 철기가 출퇴었다고 하네요.

 

 

4호분에서 출토된 금관가야 유물입니다. 직접 발굴 현장에서 고대 유물을 볼 수 있다니, 신기했습니다.

 

 

4호분에서 출토된 자라병의 근접 촬영 샷입니다. 가야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유물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빗살 무늬가 특이점이라고 했어요.

 

 

저 빗살 무늬와 6세기 경 금관가야와 왜와의 교류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말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초근접 촬영 이미지로 보면, 꼭 타이어 무늬와 닮아 보이네요.

 

 

이 자라병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발굴팀에서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는데요, 아마 술병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짐작해 봅니다.^^

 

 

그리고 유개고배로 불리는 예쁜 도자기도 출토되었어요. 아마도 제기용이 아니었을까요?

 

 

오후 2시가 되자 지역 언론사와 관심있는 시민들이 제법 모여 들었습니다.

 

 

이번 발굴팀의 (재)가야문물연구원장이 설명을 시작합니다. 아주 진지하게 사명감에 찬 모습 보기 좋았어요.^^

 

지역 역사에 조그만 관심을 갖고 발품을 팔면, 보이지 않던 신기한 장면들을 볼 수 있어요. 아래 동영상은 원지리 고분군 발굴작업 모습이에요.

 

저분들의 정성이 모여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나머지 소형분들의 발굴 작업도 무사히 마쳤으면 좋겠어요. 발굴팀에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