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는 1950년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 애틀란타가 배경이다. 전직 여교사였던 유대인 백만장자 미망인 데이지와 흑인 운전기사와의 노년 로맨스를 미려한 영상으로 담아낸 영화이다.
미스 데이지는 일흔이 넘은 고령에도 사춘기 소녀처럼 자존심 강하고 고집불통이다. 충직한 운전기사 호크를 무시하며 냉대로 일관하는 미스 데이지 할머니는 사춘기 소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미스 데이지의 속마음은 사춘기처럼 호크를 좋아하고 무조건적으로 그에게 의지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적대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미스 데이지는 호크를 함부로 대하지만 정작 본심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할리우드에서 오랫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던 배우 제시카 탠디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아 1990년 제6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좀 더 젊은 나이에 그녀가 주목을 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흑인 운전사 호크 역을 맡은 모건 프리먼은 지상에서 가장 너그럽고 사려 깊은 인간으로 나온다. 저런 심성을 가진 인간이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다.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는 캐릭터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는 모건 프리먼의 개성이 가장 강하게 묻어나는 작품이기도 한데, 아쉽게도 프리먼은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삶의 깊이가 더해지는 묘한 매력을 가진 배우 모건은 후에 <밀리어 달러 베이비>(2005)로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매력은 도저히 친구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고령의 백만장자 미망인과 흑인 운전기사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인간적으로 다가오는데 있다.
그들이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은 마치 태고적 인간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유사하다.
올곧고 자기세계에 강박적으로 집착하여 단 한 발짝도 다른 세계로 나선 적이 없었던 미스 데이지가 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호크에게 한발씩 다가갈 때마다 관객의 마음도 따스해진다.
1951년의 크리스마스, 미스 데이지가 옛날 교사시절에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알파벳 교본을 호크에게 선물하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다. 고용주와 운전기사의 직분을 떠나 비로소 인간으로서 만나는 순간이었으니까.
세월이 흐르고 흘러 호크가 그 어느 추수감사절에 미스 데이지가 있는 병원으로 찾아가 손을 잘 쓰지 못하는 그녀에게 파이를 한 스푼씩 정성스럽게 떠먹이는 장면에서 참았던 눈물을 글썽거렸던 사람들이 많았을 거다.
이 영화를 연출한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은 1970년대 오스트레일리아 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고, 그의 할리우드 데뷔작 <텐더 머시스>(1985)는 뮤지션들의 삶과 사랑을 섬세하게 묘사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내면의 상처를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 도는 그의 영화스타일이 좋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는 감독의 독특한 휴머니즘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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