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김정운의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NeoTrois 2019. 3. 4. 10:11

'잘 놀아야 행복해진다'는 주장 한마디로 인기 강사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입니다. 그가 쓴 에세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쌤앤파커스, 2009)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재미와 감탄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주장을 담은 책입니다.

김정운이 말하는 재미의 핵심 요소는 리추얼(ritual, 의식)화된 재미입니다. 저자는 리추얼을 일상에서 반복되는 행동패턴과 더불어 일정한 정서적 반응과 의미부여의 과정이 동반되는 행위로 정의합니다.

김정운에 따르면, 저자의 아내가 자신의 어깨를 두르리며 맛있게 먹으라며 빵을 내어줄 때, 뭔가 가슴 뿌듯한 느낌이 동반되면 그 행동은 리추얼이 되고,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아내가 빵을 주는 행위는 단지 습관이라고 합니다.

우리들 인간은 반복되는 리추얼에 의해 사랑받는 느낌과 가슴 설레는 느낌을 받으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김정운은 우리들의 일상에서 이 리추얼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행복의 다소가 달라진다는 주장을 시종일관합니다.

리추얼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저자는 언제가부터 큰가슴 김혜수를 좋아하기 시작했으며, 봄에는 발정하는 수컷처럼 망사스타킹을 싣고서 지나가는 여성을 보는 것만으로도 몽롱한 행복감을 느꼈다는식의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발언으로 인생에서 차지하는 '재미'의 중요성을 줄곧 강조합니다.

그러다가 돌연 김정운은 감탄하기 위해서 우리가 산다고 결론 내립니다. 식욕과 성욕은 동물적인 욕구에 불과하고 인간과 동물을 구별짓는 유일한 요소는 '감탄하는 능력'에 있다는 것입니다. 서양사람들은 '원더풀'이라는 단어가 입에 붙어 있는데 우리는 기껏 '죽인다!'라는 감탄사 하나를 가진 민족이라고 김정운은 개탄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제명을 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로 지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도발적인 책제목으로 책장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이 우리 출판계의 현실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국 중년 남성들이 김혜수의 큰가슴을 좋아하는 것을 변태적인 퇴행현상으로 규정한 저자는 영화 <타짜>이후로 가슴 큰 여배우들이 아주 노골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단정합니다.

김정운은 이외에도 여러가지 단편적인 현상을 들어 보편적인 현상으로 단정하기를 즐겨하는 듯합니다. 정주영 회장의 "해봤어?" 화법을 스스로 비판하면서도 저자는 "~해본 사람만이 안다"는 표현을 즐겨 씁니다. 

저자의 주장에 견주어 보면, "해봤어?"나 "~해본 사람만이 안다"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나 쓰는 표현이 아닐까 싶은데요...

김정운 스스로 서문에서 자신의 주장이 '사회구조론적 환원주의'만큼 무책임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항변하나, 인간이 사회경제적인 조건과 환경을 도외시하고 저자처럼 입으로만 '원더풀'을 외치고 친구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 주말마다 골프를 치며 음담패설을 하는 '재미'에 빠진다고 해서 과연 우리 인생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이 없는 처세서적들이 몇 십만부 팔리는 동안에 자신의 역작 <노는 만큼 성공한다>는 고작 2만 부 팔렸다고 한탄합니다. 

저 또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빛바랜 여성잡지의 가십난을 읽는 듯한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믿기지 않는다고 말입니다.(명작보다 언제나 통속소설이 재미있기는 합니다)

우리나라 출판계는 그저 수다 떠는 것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모양새가 여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