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종병기 활> 들숨과 날숨의 경계

NeoTrois 2018. 11. 22. 21:00

김한민 감독이 연출한 <최종병기 활>은 기존의 관념을 엎어버리고 전체에서 벗어난 화살이 개별성으로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오롯이 입증한다.

 

화살은 개별성이 없다. 특히 활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는 더욱 그렇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충무로 영화에서나 화살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늘 전체로써 존재할 뿐이었다. 우리는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무리만을 영화에서 보아왔다.


그러나 <최종병기 활>에서 활과 화살은 비로소 존재의 개별성을 획득하며 스스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 줄거리

남이(박해일)는 역적으로 몰린 아버지가 참변을 당하던 날, 동생 자인(문채원)과 가까스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의부 김무선(이경역)의 집에서 오빠와 함께 의탁하고 있던 자인은 김무선의 아들 서군(김우열)과 혼례를 올린다.

자인의 혼례식 날은 조선 인조 14년, 1636년 12월 9일 쯤이었을 것이다. 조선에 분개한 청 태종 홍타이지가 심양을 떠난지 일주일만에 압록강을 건넌 날이 12월 9일이기 때문이다. 홍타이지의 부대는 자인의 혼례식도 무참히 휩쓸고 지나갔다.


놀란 인조는 14일 밤,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다. 청 태종은 1637년 1월 1일 남한산성아래 탄천에 진을 치고 성을 완전히 포위해 버렸다. 태종이 조선의 산하와 백성, 무능한 임금을 농락한 이야기는 작가 김훈이 소설 <남한산성>(2007)에서 살아 남은 자의 아픔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참고할 만하다.


 


혼례도 마치기 전에 포로로 잡혀간 자인을 구하기 위해 남이는 홀홀단신으로 '최종병기 활'을 들고 청의 왕자 도르곤(박기웅)를 쫒기 시작한다. 청나라 정예부대 니루를 이끄는 장수 쥬신타(류승룡)는 남이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왕자를 보호하기 위해 남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남이는 태산(泰山)을 밀어 내듯이 줌 손으로 활을 잡고 버티며(전추태산), 깍지손은 호랑이 꼬리처럼 날렵하게 말아 쏘는(발여호미) 기세로 도르곤 왕자와 쥬신타의 무리를 시시각각 위협한다. 전추태산 발여호미(前推泰山 發如虎尾)는 아버지가 유산으로 물려준 남이의 활에 새겨진 경구다.

남이의 활 끝이 쥬신타에게로 극점을 좁혀갈 때 영화는 놀라운 속도감으로 비등점을 높여간다. 남이와 활은 한 몸이 되고, 남이의 화살과 함께 당겨지는 시위의 팽팽함과 바람을 가르며 힘있게 뻗어가는 화살 소리에 아슬아슬하는 전율을 느낀다. 활과 화살이 비로소 사람과 교감하여 개별적인 서사를 만들어 내는 순간이다.

남이의 화살이 부드럽게 휘어 들어가는 곡사라면, 주신타의 여섯 량짜리 '육량시'는 대륙의 무게감이 압도하는 육중한 포이다. 곡사와 육량시가 쫒고 쫒기는 서스펜스는 활과 화살의 개별적인 서사를 완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종병기 활>은 하늘에서 무수히 쏟아지는 화살떼로서의 화살이 아니라, 개별적인 화살과 개별적인 화살이 벌이는 맹렬한 대결의 서사이다.

들숨과 날숨의 경계에서 당겨지는 시위의 긴장감과 바람과 바람 사이를 가르는 화살의 진공음은 상영시간 두 시간을 아주 짧게 만든다. 물론 활과 화살의 서사와 소리에 반응하지 못하면, 이 영화는 인간 중심의 서사가 빈약하고 역사 고증이 잘못된 영화라고 투덜거릴 수 밖에 없다.

 


* <최종병기 활> 감독 김한민, 출연 박해일(남이 역), 류승룡(쥬신타 역), 문채원(자인 역), 김무열(서군 역), 박기웅(도르곤 왕자 역), 오타니 료헤이. 개봉 2011.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