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정희진처럼 읽기> 책을 읽으면 변화할 수 있을까?

NeoTrois 2018. 12. 11. 00:00

<정희진처럼 읽기>를 침대맡에 두고 자기 전에 여러 날 읽었다. 쉽게 읽히지 않는 주제들이었으나, 날카로운 페미니즘 문장이 가끔 내 몸 깊숙이 파고들 때마다 딸이 생각났다.

 

어느 날 아들, 딸이 모여 진학과 취업에 대해 대화를 하던 중, 딸이 말했다. "아빠, 아빠는 늘 남자의 편에서 살아왔잖아요" 순간 여고생의 페미니즘 수준에 깜짝 놀랐다.

 

그 말에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남자로서' 편하게, 적어도 손해보지 않고 살아 왔지 않느냐는 적의와 함께 그런 '남자'가 '여자'인 자신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원망이 스려 있었다.

 

책 날개에 소개된 저자 정희진은 여성학과 평화학 연구자다. 유교 질서가 건재한 사회에서 페미니스트의 위치와 분단국가에서 평화학은 늘 논쟁을 수반한다.

 

<정희진처럼 읽기>는 저자가 그간 쓴 독후감 79편을 묶었다. 정희진은 독후감을 책을 읽기 전후의 변화한 자신에 대해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79편의 서평에는 책 내용에 대한 요약이 없다.


 

책의 내용 요약이 없으니, 정희진의 서평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책을 먼저 읽어 보아야 한다. 독자에게 적극적인 책 읽기를 요구하는 셈이다.

 

저자는 독자의 경험과 인식, 감수성에 따라 독후감의 수준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정희진이 읽고 쓴 79권의 독후감에는 이 땅의 여자로서, 혹은 평화학 연구자로서의 글쓰기 노동이 오롯이 느껴진다.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은 나의 '독후감'은 딸의 입장을 조금은 더 깊게 혹은 넓게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는 거다. 나아가 세상의 모든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거다.

이 책을 사온 아들이 고맙다. 2014년 10월 20일 발행, 2017년 12월 12일 초판 7쇄 발행본이다. 불편한(?) 주제임에도 7쇄라니 '정희진 팬덤'이 형성되어 있단 뜻이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아들에 또 한번 놀랐다.

 

정희진의 독후 서사에 매료된 독자라면 아마도 79권의 책 중에서 적어도 한 두권쯤은 찾아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호미 바바의 <문화의 위치 - 탈식민주의 문화 이론>,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 정도는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의 신작 <혼자서 본 영화>(2018)도 욕심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