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3차원의 기적] 신경과학자가 밝힌 주변시와 입체맹 이야기

Tree Days 2020. 4. 2. 20:00

신경과학자가 쓴 『3차원의 기적』(수전 배리 지음, 김미선 옮김, 초록물고기, 2010)을 읽어 보고 나서야, 시력이 정상임에도 내가 왜 곧잘 방향감각을 잃어버리는지에 대한 이유를 역시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주변시와 입체맹과 관련이 깊었다.

 

길치인 나는 비가 오는 날에는 방향 감각을 상실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시각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력도 정상이다. 다만, 특정 순간에 공간 지각 능력이 올바르게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저자 수전 배리는 우리가 길을 찾거나, 운전하거나, 축구를 할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예민한 주변시(視)라고 말한다. 주변을 파악하는 감각이 훌륭해서 자신이 공간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려면, 예리한 중심시 이상으로 주변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괜찮은 운동선수와 비범한 운동선수를 구분하는 기술이기도 한 주변시는 '필드 센스 field sense', 즉 매우 발달된 공간 감각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눈이 열두 개라는 디에고 마라도나는 아마도 이 주변시가 극도로 예민하게 발달한 축구 천재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3차원의 기적』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게 되는지에 대한, '시각'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다룬 책이다. 이 책은 마흔여덟 살이 되기까지 완전히 평평한 2차원의 세계만을 보아왔던 입체맹인 저자가 드라마틱하게 입체적으로 세상을 보게되는 눈을 얻게 되는 과정이 매혹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입체맹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수전 또한 세상에 입체맹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당연히 자신이 입체맹인지도 몰랐다. 어렸을 때 부터 사시 교정 수수을 세번이나 받고, 스스로 신경과학을 연구하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입체맹을 극복한 그녀의 노력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수전 배리는 자신이 입체적 깊이가 있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입체시가 정상인 사람은 언제나 입체시가 없는 사람의 세계상을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녀가 시훈련 치료로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게 되었을 때의 놀라움을 클로드 모네의 말을 인용하며 설명한다.

 

나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원한다. 다른 화가들은 다리, 집, 보트를 그리고, 그걸로 끝이다. 그들은 그림을 완성한다.

나는 그 다리, 집, 보트를 둘러싸는 공기, 이 사물들이 놓여 있는 공기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고,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 수전 배리, 『3차원의 기적』(김미선 옮김, 초록물고기, 2010) p.168
'클로드 모네'


수전 배리는 ‘결정적 시기’가 지나면 3차원의 입체시가 회복 불가능하다는 봉인된 운명을 과학자로서의 탐구정신과 불굴의 의지로 스스로 과학적 반증을 만들어 내었다. 그간 입체시를 얻기 위한 ‘결정적 시기’(대략 3~4세경)가 지난 다음에는 입체시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이 책은 '시각'에 대한 '과학'을 담고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인지하는 지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도 담겨 있다. 『3차원의 기적』은 시각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나 성인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줌은 물론, 시 감각에 대한 생각의 폭도 넓혀 준다.

사물들이 놓여 있는 공기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싶었던 클로드 모네처럼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가 늘 보고 있는 익숙한 사물들의 배경속 공간이 열리며 깊이가 충만한 세상을 만날지도 모른다.

이 책의 초반부를 읽고 있을 때 나도 혹시 입체맹이 아닌가 의심했었다. 수전 배리가 제공하는 입체시 단서들, 비무선점 입체도나 '브룩 끈 Brock string' 등으로 테스트해 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수잔 배리는 말한다. 당신의 습관과 당신이 늘 세계와 협상해 온 방식을 바꾸려면 엄청난 각성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인간의 뇌는 놀라운 적응력을 갖고 있다. 그녀의 삶을 보면 세상에 봉인된 운명은 없다는 걸 다시한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