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심야의 FM', 수애와 유지태의 숨막히는 심리전

NeoTrois 2019. 10. 24. 14:57

영화 <심야의 FM>은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한 남자의 비극을 그린 범죄 스릴러물이다. 물론 이 영화의 표면상 주인공은 라디오프로그램 '심야의 영화음악' 진행자 선영(수애)이다.

 

그러나 정작 이 영화를 저 어두운 곳에서 끌고 가는 주인공은 그녀의 애청자 동수(유지태)이다. <심야의 FM>은 영화 속에서 진행되는 2시간의 이야기와 영화의 러닝타임과 거의 비슷하다.

 

몇몇 점프 컷이 있긴 하지만, 관객들은 스튜디오 속에 갇힌 선영의 불안감을 거의 동시에 느끼며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그래서 관객들의 눈에 동수의 처연함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선영은 5년 동안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심야의 영화음악실”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선영은 9시 뉴스 앵커시절 검찰을 향해 촌철살인의 멘트로 인기를 얻었고, 라디오에서도 인기 DJ를 누렸으나, 말을 못하는 큰딸의 수술을 위해 은퇴를 결심한다.


이 사실은 안 그녀의 스토커 동수는 그녀의 동생과 두 딸을 인질로 잡고 그녀의 마지막 방송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하지 하지 않으면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한다. 


선영은 가족을 구하기 위해 동수가 시키는 대로 자신의 마지막 방송을 겨우 하게 되고 동수는 예정된 마지막 장소로 선영을 유인한다.


이것이 <심야의 FM>의 대강의 줄거리인 셈인데, 시나리오가 매우 깔끔한 것을 알 수 있다. 여자 주인공은 스튜디오라는 제한된 공간과 2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녀를 포획한 스토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협박의 강도를 높여 가게 된다. <심야의 FM>에서 팽팽한 긴장감은 말을 하지 못하는 선영의 어린 딸과 동수의 술래잡기에서 극도로 높아진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어린 딸은 관객들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며 시선을 잡아끄는데 거의 완벽하게 성공한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 선영의 직업의식도 묘하게 위기감과 긴장감을 조장한다.

 

선영 역을 맡은 배우 수애는 이 영화에서 한층 절제된 연기력을 보여줬다. <심야의 FM>를 본 많은 관객들은 수애가 라디오 진행도 수준급으로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데 동의할 것이다.


유지태와 수애가 서로 속삭이듯이, 또 어떨 때는 격렬한 분노로 대사를 치는 장면들은 침을 꼴깍 삼키게 만든다. 


많은 분들이 <올드보이>에서 이우진 역을 맡았던 유지태와 겹친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이 영화에서 유지태의 연기는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연기였다는 것도 말해두고 싶다. 


유지태가 역을 맡은 동수는 ‘영화’속에 산다. 돈키호테가 기사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면 동수는 영화 속 영웅들에 심취해 있다. 선영이 “심야의 영화음악실”에서 영화 속 영웅 이야기를 하면, 동수는 그 영웅이 되어 현실의 쓰레기를 처리한다.

 

동수에게는 돈키호테가 그랬던 것처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오늘도 우리는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면서 살아간다. 그 중에서 누군가는 용감하게 돈키호테처럼 꿈을 꿀 수도 있겠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참아가며, 바로잡을 수 없는 잘못을 바로 잡고, 저 먼 곳의 순수하고 정결한 것을 사랑하며 양팔의 힘이 다 빠질 때까지,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저 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별을 향해 갈 수는 없는 존재이다. 무수한 법들과 제도들이 하늘의 별들을 지상에서 대체하고 있다. 그 법과 제도들은 약한 사람을 답답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인간이 별이 될 수는 없다. 슬픈 수염의 기사 돈키호테가 동수에게서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