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2011년작 <친구와 연인사이>는 애쉬튼 커쳐의 장점을 잘 살렸다. 이 영화는 청춘들의 발칙한 연애담을 특이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관객들은 로맨틱 영화에서 두 남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랑에 빠질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보게 마련이다.
그런데 <친구와 연인사이>는 민망하게도 두 남녀가 충동적으로 덜컹 사랑부터 시작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물론 남자에게는 핑계거리는 있다. 아담(애쉬튼 커쳐 분)은 아버지가 자신의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하자 꼭지가 돌아 버렸다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그런 변명의 여지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엠마’(나탈리 포트만 분)는 사랑을 나눈 후 아담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비상연락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말 것과 꽃 선물 금지, 애교 금지 등등. 애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요소들을 원천 차단한다. 단지 그와는 육체적으로만 즐기겠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연애 절차는 먼저 마음을 탐색하고 그것이 끝나면 몸의 탐색을 시작하는 거라고 보통 생각한다.
그런데 연애 고수들은 진부한 방식을 무시하고 역방향을 취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친구와 연인사이>도 그런 경우다. 사랑에 빠지지 않고 먼저 몸을 탐색하고 마음을 탐색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친구와 연인사이>는 두 시간 가까이 친절하게 설명하며 두 남녀가 먼저 몸의 탐색을 끝내고 마음을 탐색해 가는 과정을 코믹하게 보여준다.
이들의 연애 성적표는 반대 경우들의 연인들만큼이나 그 결과는 똑같다.
마음에서 시작했건, 몸에서 시작했건, 사랑의 행로는 방향만 다를 뿐, 언제나 같은 법이라는 걸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깨우쳐 준다.
왜? 사랑은 몸과 마음으로 이분해서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니까. 몸과 마음은 다른 것이 아닌 까닭이니까.
몸과 마음은 강물이 바다를 만나듯이 언제가 만나게 되어 있다.
물론 이 경우는 바다가 강으로 먼저 올라와 만난 경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뻔한 로맨틱 영화 보기를 좋아한다. 사랑은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니까.
그것은 타자들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 또 확인하고 싶은 욕망의 발로이다.
<친구와 연인사이>를 보는 재미는 또 있다. 애쉬튼 커쳐라는 당대 제일가는 건강한 몸매와 나탈리 포트만의 눈부신 몸매를 보는 재미.
애쉬튼 커쳐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나면 대체로 마음이 즐거웠다. 그의 해맑은 얼굴은 세상에 저런 남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풋풋하고 유쾌했다.
가볍고 쉬워 보이는 단점은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로맨틱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써 제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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