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진 세버그] 영화처럼 살다 간 비극적인 요정

NeoTrois 2020. 3. 5. 20:00

영화 <네 멋대로 해라>(1959)의 요정 진 세버그는 1938년 11월 13일 미국 아이오와 주 마셜타운에서 태어났다. 많은 비평가들은 현대 영화 언어의 시작은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오토 프레밍거의 영화 <성 잔 다르크>(1957)의 오디션에 1만 8천여명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진 세버그는 그들을 제치고 잔 다르크역에 캐스팅 됐다. 그녀의 나이 17살의 때였다.

 

<성 잔 다르크>는 유감스럽게도 평단으로부터 악평을 면치 못했다. 프레밍거 감독은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게 위해 <슬픔이여 안녕>(1958)에서 다시 진 세버그를 기용했지만, 악평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이, 프랑스가, 파리가 진 세버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 세버그는 장 뤽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출연하며 불과 20살의 나이에 세계적인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된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 진 세버그의 연기는 현실에서 벗어난 초연함과 권위에서 일탈한 자유로움이 넘치는 캐릭터를 창조했다. 진 세버그는 극중에서 자동차 도둑 미셀과 까닭모를 애정을 느끼며 섹스에 탐닉하다 사랑을 회의하는 젊의 여성의 내면을 소름 돋게 연기했다.

 

영화사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진 세버그의 삶은 흡사 극중 패트리사가 된 것 같았다. 그녀는 1960년대 후반 흑인민권운동, 전미 유색인 지위향상 협회와 블랙펜더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민권운동가가 되었다. 이는 진 세버그를 FBI 요주의 표적으로 만들었다.

 

1970년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기의 아빠가 블랙펜더의 지도자라는 소문이 퍼져 나왔다. 진 세버그는 심한 정서적 혼란으로 조산을 하였고, 태어난 딸은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진 세버그는 결혼을 네 번 했다. 끊임없는 파파라치들의 추적과 FBI의 모략 등으로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진 세버그는 1979년 9월 8일 그녀의 사체가 자동차 뒷자석에서 발견되었다. 사인은 과음 후 치사량의 약물투여였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41세였다.

 

그녀의 세 번째 남편 소설가 로맹 가리는 9월 10일 아들 디에고와 함께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970년 당시 진 세버그가 흑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중상 모략하여 그녀를 정신병으로 몰고 갔다는 이유로 미연방수사국(FBI)을 고발했다. 세간에는 FBI의 전설적인 국장 존 에드거 후버의 작품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어요. 하지만 행복이 다는 아니죠."

 

진 세버그가 남긴 말처럼 인생은 행복이 다가 아닐 때가 많다. 짧았던 인생에서 그녀가 남긴 많지 않은 영화들은 그녀의 비극적인 운명을 더욱 애잔하게 만든다.

 

2019/06/27 - [영화] - 네 멋대로 해라, 현대 영화 언어의 시작 - 장 뤽 고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