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줄리엣 비노쉬의 광적인 사랑

NeoTrois 2019. 11. 5. 19:47

레오 까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1991)은 내일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자들의 광적인 사랑을 그린 로맨스 영화다. 퐁네프 다리에서 한스와 함께 노숙자 생활을 하는 알렉스(드니 라방)는 어느 날 비닐을 덮고 자는 미셀(줄리엣 비노쉬)를 만난다.

 

미셸은 사랑을 잃고 시력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미셸은 화가가 꿈이었고 내일에 대한 절망 끝에 가출하여 퐁네프 다리에 노숙자로 온 것이다. 미셸은 다리를 심하게 절뚝대고 있는 알렉스를 흐리하게 스케치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미셸은 한스에게 말한다. "떠나기 전에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고 싶어요. 눈이 좋지 않아 낮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는 볼 수 없어요"

 

한스는 미셸을 데리고 박물관에 몰래 들어가 촛불을 들고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감상하고, 박물관에서 둘은 깊은 포옹을 한다. 다음 날, 한스는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이후 알렉스는 미셸과 나름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자폐증적인 청년 노숙자와 삶으로부터 도망친 여성화가와의 사랑은 어떤 색깔이었을까?

 

si tu aimes quelqu'un demain, tu diras le ciel est blanc si c'est moi que tu aimes je te dirai le nuage est noir comme ca on sera qu'on s'aime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이 하얗다고 해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난 구름이 검다고 대답할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거야.

 

알렉스가 잠든 미쉘의 머리맡에 쪽지 하나를 쓰고 절둑거리며 퐁네프 다리를 가로질러가는 장면은 이들의 사랑의 색깔을 상징한다.

 

알렉스는 지하철역 통로 벽에 붙은 미셸을 찾는 포스터를 발견하고 모두 불 태운다. 그러나 미셸은 낡은 라디오에서 가족들이 자신을 찾는 방송을 듣고 알렉스가 잠든 사이에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한 적은 없었어'라는 쪽지를 남기고 가족에게 돌아가 버린다.

 

알렉스는 격분하여 총을 쏴 자신의 손가락을 날린다. 알렉스는 방화범으로 체포돼 3년 형을 선고 받아 감옥에 수감된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어느 날, 시력을 회복한 미셸이 알렉스를 찾아온다. 두 사람은 알렉스가 출감하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퐁네프 다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크리스마스이브, 눈 내리는 퐁네프다리 위에서 알렉스와 미셸이 해후한다. 알렉스는 미셸을 끌어안고 다리 난간에서 센 강으로 떨어진다. 아틀란티스로 가는 모래를 운반하는 배에 의해 구조된 미셸과 알렉스는 배의 앞머리에 함께 기대어 있다.

 

달리는 배와 함께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퐁네프의 연인들>는 끝난다.

 

★ 프랑스인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제작과정

퐁네프의 다리는 파리 세느강의 아홉 번째 다리로 가장 오래 되고 낡았다. '누벨 이마쥬(Nouvelle Image)'의 선두 주자였던 레오 까락스는 <나쁜피>(1986년)에 이은 그의 새로운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퐁네프 다리에서 찍겠다고 선언한다. 그 때 잠정 제작비는 3,600만 프랑이었다.

 

파리시의 촬영 불허조치에 대하여 프랑스 예술인들은 연대하여 퐁네프를 배경으로 영화를 촬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한다. 당시 시장인 쟈크 시락은 한 발 물러나 1988년 여름 3주 동안만 촬영을 허가한다.

 

우열곡절 끝에 크랭크인에 들어간 <퐁네프의 연인들>은 허락된 3주 동안 단 5분 분량을 촬영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제작자들은 대안으로 세트를 설치할 것을 감독에게 제안하고, 레오 까락스는 퐁네프 다리를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세트장은 30여만 평 규모로 길이 100여 미터, 폭 15여 미터의 퐁네프 다리를 그대로 재현했다. 퐁네프 다리와 똑같은 대리석이 사용되었고, 실제 센강의 깊이와 똑같은 15~20여미터 깊이로 땅을 파 강으로부터 물을 끌어 올려 인공 세느강을 만들었다.

 

이 세트장 짓기 위해 제작기간 1년 7개월 동안 20,000만여 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현재 이 퐁네프 다리 세트장은 관광 명소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단 45분을 찍는데 6,000만 프랑을 써버린 이 영화는 1988년 12월 촬영은 중단된다. 제작자는 파산했고 더 이상 돈줄이 없었다. 1989년 7월 스위스의 부호 Van Buren의 제정 지원으로 촬영은 다시 시작되었으나, 그 또한 1800만 프랑을 추가 투자하고 6주 만에 물러나고 말았다.

 

온갖 루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미완의 퐁네프로 프랑스 영화사에 그냥 묻혀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 속에 일 년이 흘렀다. 그러는 가운데, 프랑스 문화성 장관 쟉끄 랑(Jacques Lang)은 제작자를 물색하는 열의를 보여 주기도 했다.

 

드디어 <까미유 끌로델>의 제작자인기도 한 크리스티앙 푸쉬네가 마지막 총제작자로 나서 7,000만여 프랑을 재투자하여 1990년 8월 <퐁네프의 연인들>의 촬영은 재개된다.

 

제작기간 5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낸 <퐁네프의 연인들>은 총제작비 1억 9,000만 프랑(한화로 약25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투자된 끝에 1991년 3월 완성된다. 돈 들인 구석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런 연유다. 세트장에 돈을 다 퍼부은 셈이다. 채 1분도 되지 않는 <퐁네프의 연인들>의 불꽃놀이 장면에도 약 20억(폭죽 20,000개)을 쏟아 부었다.

 

줄리엣 비노쉬는 콘티에 필요한 스토리 보드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 나오는 그림들의 전부(거리에 나붙은 포스터의 얼굴과 알렉스를 모델로 그렸던 숱한 작품들 등)와 광고물로 제작된 포스터의 도안 및 그림까지 직접 그렸다.

 

이 영화 제작과 관련한 수 없는 에피소드들은 이 영화에 쏟아 부은 프랑스 예술인들의 열정과 고집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나는 국내 상영시 상영 시간이 길다는 이유와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영화 초반부 약 5분을 가위질해 버렸다.

 

★ 레오 까락스 감독은 <나쁜 피(Mauvais Sang)>(1986), <퐁네프의 연인들>(1991), 99년 네번째 작품 <폴라 X>(1999) 등 전위적인 작품들로 주목을 받아왔다. 감독 자신 또한 심한 자폐증의 병력으로 실어증에 가까운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드니 라방은 <레미제라블>(1982)을 통해 데뷔했으며, 레오 까락스 감독의 페르소나로 일컬어지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이다.

 

★ 제5회 유럽영화상 (1992) 유러피안 여우주연상(줄리엣 비노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