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용 감독의 <적과의 동침>(2011)은 조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실패했던 영화입니다. 개봉당시 관객 수가 이십만 명 남짓 했으니까요. 영화도 개봉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한 시골마을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담아낸 <적과의 동침>은 유해진과 변희봉, 김상호, 신정근 등 조연들의 연기가 볼 만해 다시 봐도 좋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배경은 한국전쟁 당시의 오지마을 석정리 마을입니다. 석정리는 한가롭기만 할 뿐, 전쟁소식은 그저 풍문으로만 간간히 들려옵니다.
마을은 이장(변희봉)의 손녀딸 혼사 준비로 분주할 뿐입니다.
손녀딸 설희(정려원)는 정혼남 택수(이신성)와의 초야를 앞두고 마음이 은근 설렙니다. 바로 그때 정웅(김주혁)이 이끄는 인민군이 석정리에 입성합니다.
그런데 반공청년단장이라고 기세가 등등했던 택수는 정혼녀 설희를 버리고 하룻밤 사이에 도망치고 맙니다. 그 빈자리를 정웅이 채우면서 <적과의 동침>은 급 로맨스 모드로 진입합니다.
정웅과 설희는 어린 시절 아주 짧았던 기간 동안 ‘메기의 추억’을 같이 부르며 첫사랑의 감정을 품었던 사이였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적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첫사랑의 기억을 어떻게 소환하고 변주해 나갈까요?
그 어려움은 석정리 마을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민군을 빨갱이라 부르던 마을 사람들은 인민군에게 마음을 열어가고, 인민군 또한 마을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적과의 동침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조연들의 활약이 컸던 것 같습니다. 재춘(유해진)을 유혹하기 바쁜 수원댁(양정아)의 능청스러운 추파도 살갑게 다가올 정도였으니까요.
정웅은 퇴각하면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집니다. 자신들의 퇴각행로를 미군들에게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을 몰살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상부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적과의 동침>은 이러한 휴머니즘적 갈등과 어린 시절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을 불러냄으로써, 한국적 감수성을 조용하게 자극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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