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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잉" 숫자로 예언된 인류의 종말

NeoTrois 2019. 3. 4. 23:31

영화 <노잉>(2009)은 숫자로 예언된 인류의 종말을 그린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재난 블록버스터입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MIT 교수 역을 맡았는데, 지적 연기가 잘 어울렸습니다. 

MIT 천체물리학 교수인 존(니콜라스 케이지)은 호텔 화재로 아내를 잃고 위스키에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존은 MIT 강의실에서 이 영화의 주제를 암시하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집니다.

“우주의 생성이 결정론에 기인하는가 아니면 무작위론에 기인하는가?”

모든 일은 어떤 목적에 따라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결정론과 모든 현상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는 무작위론은 과학계의 해묵은 논쟁거리이지요. 아내를 사고를 잃은 존이 결정론을 신봉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목사인 아버지와도 소원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을 거구요.

"신은 결코 우주를 상대로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미래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외에는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노잉 줄거리]

영화 <노잉>의 오프닝 시퀀스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1959년, 매사추세츠 렉싱턴에 있는 윌리엄 도스 초등학교는 개교기념일 행사로 학생들에게 미래의 모습을 그리게 하고, 그 종이들을 타임캡슐에 봉인해 둡니다. 

학생들은 모두 들뜬 마음으로 자신의 미래를 그림으로 그렸지만, 소녀 ‘루신다’는 그림 대신 귓가에 속삭이는 숫자들을 신들린 듯 그대로 종이 위에 빼곡하게 옮겨 적었습니다.

2009년, 개교기념일을 맞은 윌리엄 도스 초등학교는 50년 전에 묻은 타임캡슐 개봉 행사를 열고, 존의 아들 캐일럽(챈들러 캔터버리)의 손에는 루신다의 그 종이가 돌아옵니다.

<노잉>(개봉 : 2009. 4. 16)

그 종이에 쓰인 숫자들을 면밀하게 검토한 존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 숫자판은 9·11을 포함한 지난 50여 년 동안 발생했던 재난의 날짜와 사망자 수, 사건이 일어난 지점의 위도와 경도를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 <노잉>은 종이에 적힌 숫자들이 실제로 발생할 것인가에서 시작하여, 그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주인공 존이 과연 막을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들이 긴장감을 배가시킵니다.

숫자판에서 아직 발생하지 않은 3건을 발견한 존은 다가올 재앙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나 모두 실패로 끝납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마지막 예언 숫자는 “33”

존이 루신다의 옛 선생님을 찾아가면서 숫자판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초에 한 걸음 바짝 다가갑니다. 루신다는 이미 죽었다는 것, 그녀에게 다이애나라는 딸이 있다는 것!

존은 예언자의 딸 다이애나와 함께 그녀의 어머니가 살았던 집에서 마지막 숫자 '33'이 'EE'를 상징하는 것이며, 이는 인류 전체(Everyone Else)를 은유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야흐로 지구의 종말이 도래했다는 것이지요.

[노잉 결말]

존은 비상한 추리력으로 루신다의 옛집이 마지막 구원의 장소라고 말하지만, 다이애나는 태양의 열기를 피하기 위한 최적지로 동굴을 선택해요. 다이애나가 그녀의 딸 애비와 케일럽을 데리고 동굴로 달리던 중, 대형트럭과 충돌하여 사망해요. 어머니 루신다가 예언했던 바로 그날이었죠.

존은 루신다의 옛집에서 외계인들의 우주선에 케일럽과 애비를 태우고 떠나보냅니다. 두 아이가 인류의 미래로 선택된 것이지요. 그리고 존은 목사인 아버지를 찾아가 화해해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었던 존이 결정론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에요. 

영화 <노잉>은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케일럽과 애비가 마치 꿈 속의 한 장면처럼 새로운 행성의 풀밭 위에서 커다란 나무를 향해 뛰어가는 장면이에요.

존이 결코 예언된 사건들을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인간은, 우리 인생은 예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목적지를 향해 재깍재깍 흘러갈 따름인가요? 그렇담, 우리 인생은 너무 허무한 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만큼 오늘도 우리는 스스로의 의미를 찾아 열심히 살아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