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책]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NeoTrois 2018. 10. 13. 02:22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조선의 시대정신을 뒤흔든 문제작이었습니다. '열하일기'에서 시도된 연암의 파격적인 글쓰기는 정조가 문체반정 정책을 펴면서, 그 주동자로 연암과 '열하일기'를 지목할 정도였으니까요. 

정조는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 등이 편찬한 종합무예서 <무예도보통지>를 보고서 "연암의 문체를 본떴구나."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1780년 5월, 영조의 사위인 삼종형 박명원이 정사로 이끄는 청 건륭황제의 70세 만수절 축하 사절단의 일원이 되어 연행길에 오르게 돼요.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사절단의 일원으로, 음력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면서부터 8월에 북경에 들어가 10월에 귀국하기까지의 여정을 세세하게 기록한 여행문집입니다.

'하루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다'의 연암의 우레와 같은 문장이 가슴에 남아 일전에 <열하일기> 원전 읽기에 시도하였다가 그만 중도에 포기했던 아픈 기억이 있어요. 아주 오래 전에 출판된 그 책을 각주 없이 읽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었죠. 

그래서 읽기 쉬운 책으로 고른 것이 고미숙의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아이세움, 2007)이에요.

엮은이 고미숙은 고려대학교에서 독일문학과 한국고전문학을 공부하고, 고전평론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요.

청소년들이 우리의 고전문학을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현대적인 감각으로 <열하일기>를 번역한 글에 연암 박지원에 대한 배경 이야기들을 같이 엮어 놓았어요.

<열하일기>는 18세기 조선 지성사의 지적 분위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예요.

북벌론으로 무장한 '사대교린'이 지배하던 조선의 시대상황에서 북학파 연암이 자신이 생각하는 삶과 문명의 비전을 하루도 빠짐없이 그날의 여정과 함께 세밀하게 기록해 두었기 때문이죠.

연암의 문장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큽니다. 세밀한 관찰력과 끊임없는 사유에서 비롯되는 문장들은 장엄하면서도 섬세하기가 이를 데 없어 대가의 경지가 느껴지니까요.

다음은 20세기 초 <연암집>을 펴낸 창강 김택영이 <삼국사기>의 '온달전'과 더불어 오천 년래 최고의 문장이라고 격찬한 '밤에 고북구를 나서며(夜出古北記)'의 한 구절이에요.

"때마침 상현이라 달이 고개에 드리워 떨어지려 한다. 그 빛이 싸늘하게 벼려져 마치 숫돌에 갈아 놓은 칼날 같았다. 마침내 달이 고개 너머로 떨어지자, 뾰족한 두 끝을 그러내면서 갑자기 시뻘건 불처럼 변했다. 마치 횃불 두 개가 산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북두칠성의 자루 부분은 반쯤 관문 안쪽으로 꽂혔다. 벌레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나고 긴 바람이 싸늘하다. 숲과 골짜기가 함께 운다(…) 하늘 저편에서 학 울음소리가 대여섯 차례 들려온다. 맑게 울리는 것이 마치 피리 소리가 길게 퍼지는 듯하다. 누군가 말했다. "고니 소리네"(153-154쪽)

연암이 고북구 장성을 지나며 썼던 글인데, 고북구 장성은 진나라 이후부터 송, 원, 명에 이르기까지 북방 오랑캐들과 수많은 싸움이 벌어졌던 관문이었다고 해요.

고북구 장성을 오르며 연암은 거대한 제국의 역사와 전장의 무상함을 달래고, 장성 벽 한 귀퉁이에 이렇게 썼다고 해요. 

"건륭 45년 경자 8월 7일 야삼경, 조선의 박지원, 이곳을 지나노라." 

230여 년 전, 조선의 사내 박지원이 고북구의 장성에 새겨놓았다는 그 글이 아직도 현존하고 있는지 탐방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구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