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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평평하다', 토머스 L. 프리드먼의 사악한 주장들

NeoTrois 2019. 10. 23. 21:07

세계가 평평하다는 토머스 L. 프리드먼의 믿음은 확고하다. 과거 둥글었던 지구가 새로운 기술들로 인하여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들이 좁아져 세계는 점점 평평해져가고 있으며, 그 추세는 역전하기 힘들다는 것이 <세계는 평평하다>의 결론이다.

프리드먼은 세계가 이렇게 평평해진 동력으로 10가지를 꼽았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와 윈도즈 출현, 넷스케이프 출시, 워크플로 소프트웨어, 오픈소싱, 아웃소싱, 오프쇼어링, 공급사슬, 인소싱, 인포밍, 스테로이드 등이다. 


프리드먼이 어렵게 10가지로 분류했지만, 실상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발달을 세분한 것[각주:1]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동력으로 오늘날 세계는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적인 경계가 허물어지고 경제적인 차이 등 거의 모든 격차가 해소되면서 세계는 모든 참여자들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열린 하나의 시장이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래는 평평함이 전 세계를 압도한다는 말이다.

평평화의 동력을 적극 활용한 기업들은 대부분 다국적 기업이 되었다. 물론 프리드먼이 거명한 거대기업들의 리스트는 거의 미국산이다. 월마트, IBM, GE, UPS, 이베이, 델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 등이다. 


프리드먼이 구체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 눈부신 기업들의 공통점은 공급 사슬을 장악한 데 있다. 주문에서 생산, 애프터서비스까지 전 세계에 걸치는 공급의 수도꼭지를 틀어쥐었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프리드먼은 평평한 세계에서 미국인들이 살아남으려면 특별한(special), 전문화된(specialized), 자리 잡은(anchored), 적응을 잘하는(really adaptable) 노동자, 즉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되라고 주문한다. 


그래야만 인도나 중국 등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머스 L. 프리드먼 저, 김상철·이윤섭 옮김, <세계는 평평하다>, 창해, 2005년

그러면서 저자는 친절하게도 개발도상국들에게 성찰과 반성, 그리고 실천이 중요하다는 충고를 잊지 않는다.


자기 성찰을 위해서는 오늘날 세계에는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모임과 유사한 것이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 이름은 ‘익명의 개발도상국들’이 적당할 것이다.

개발도상국들은 개발도상국 모임에 참가해 “내 이름은 아르헨티나이고 잠재능력보다 성장을 덜하고 있습니다. 나의 잠재력에 부응하지 못하고 삽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 지구는 평평하다 pp. 418-419.


이것이 바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저자 장하준이 말했던 자유무역론자이자 글로벌지상주의자인 토머스 L. 프리드먼의 사악한 모습이다. 


그런데 규제를 남김없이 철폐하고 빗장을 완전히 열어젖힌 개발도상국들의 값싼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몰려들면 미국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이에 대한 비책도 세워두었다. 과거, 그리고 지금도 부자나라들은 가난한 나라들이 제조업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보호관세와 보조금 철폐를 요구하며 1차산업에만 묶어 두려고 했듯이, 이제는 단순 기술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서비스 업종이나 생산직 일자리 등은 개발도상국들에게 넘겨주고 자국은 지식을 소유한 고급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는 보다 전문화되고 고급스러운 일만 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미국에서만 가능할까. 저자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미국에는 MIT와 같은 훌륭한 대학들과 우수한 연구기관들이 미전역에 넘쳐난다는 것이다.

그들이 미국민들을 지식의 사닥다리를 기어오르게 해 준다는 것이다. 


지식의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간 미국인들은 창의적인 일을 하며 개발도상국들의 단순기술 노동자들을 노예삼아 귀족같은 안락한 왕국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개발국가들은 한가롭게 연구에 매진할 시간이 없으며 투자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도 없다. 생각해 보라! 기근으로 아사를 면치 못하는 나라에서 학문과 연구가 가당키나 하겠는가. 이 흐름이라면 저자의 바람은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옛말에 팔불출이란 말이 있다. 첫째가 제 잘났다고 뽐내는 자이고 두 번째가 마누라 자랑하는 자, 셋째가 자식 자랑하는 자라고 한다.

세 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명한 언론인 겸 작가인 저자가 고급스러운 두툼한 양장 이곳저곳에서 침이 마르도록 처자식 자랑을 하는 것을 보니 팔불출이 영락없다. 


  1. 1990년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이 출간되었을 때, 적잖은 흥분과 신선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그 모티브들은 이 책에서 그대로 재현된 듯 하다.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출신답게 10가지 기술들을 세세하게 소개하는데 열정을 보였다. 앨빈 토플러가 미래 흐름을 권력이동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프리드먼은 공급 사슬에 포커스를 두어 흐름의 방향을 잡아낸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