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랜 토리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철학이 담긴 영화

NeoTrois 2019. 6. 5. 07:55

영화 <그랜 토리노>는 오프닝 샷이 올라가자마자 미간을 잔뜩 찌푸려 눈동자조차 잘 찾아볼 수 없는 예의 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과 만나게 된다. 꾸부정한 어깨와 피로에 지친 걸음걸이로 아내의 장례식을 치루는 그의 모습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이 연출한 <그랜 토리노>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평생을 보낸 포드 자동차 공장에서 은퇴하고 여생을 보내고 있는 월트 코왈스키 역을 연기한다.

한국전에 참전한 월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가에 몽족들이 하나 둘 늘어나는 것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의 집만이 성조기가 외롭게 펄럭이고 있다.

참회를 하라는 아내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월트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공공연히 흑인들에게 쏟아낸다.

"만일 니네들이 마주 치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봤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가 바로 나야"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광폭하게 흥분하지 않고 조용하게 자신의 존재를 주택가에 드러낸다. 그의 얼굴에서 분노나 평온의 표정은 미세하게만 떨릴 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그의 이웃들은 그의 감정 상태를 알고 있고, 관객들도 그의 심경을 읽어낸다. 이 점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 매력이다.

그러나 <그랜 토리노>에서는 냉혹했던 총잽이는 온데 간대 없고, 소년을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힘이 아무것도 없는 늙은이만 있을 뿐이다.

타오의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헐떡이는 숨으로 뜀박질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주름살은 더 깊게 패여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예전 영화들에서 그랬듯이 그만의 방식으로 약한 자는 보호하고 악한 자는 처벌하는 길을 찾아내고야 만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의 집념은 더욱 공고해졌다.

신의 대리인인 신부도, 법의 집행자인 경찰도 그의 결단에 찬 걸음걸이는 막지 못했다. 그것은 역시 지극히 클린트 이스트우드적인 해결 방식이었다.

이 영화의 엔딩 시퀀스는 비로소 그가 온전하게 아버지 되기에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황홀한 순간이다.

제62회 칸영화제는 클린스 이스트우드에게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여했다.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인생

대공황이 시작되던 1930년에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제대로 된 연기 수업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1964),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무법자>(1966) 3부작은 그를 신화적인 서부의 사나이로 만들어 놓았다.

1971년 <어둠 속에 벨리 울릴 때>로 연출과 주연의 세계를 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1970년대 <더티 해리>(1971)가 되었고, 이후 그의 캐릭터는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복수와 정의의 실현 사이에서 번민하는 <용서받지 못한 자>(1992)가 되어 갔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잠시 로맨틱한 사랑을 나누기도 하였지만, 주름이 깊게 패인 그의 얼굴에서 ‘범죄자는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고, 약한 자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라는 단호한 페르소나는 <그랜 토리노>에서도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