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책 '세종처럼' 정치를 꿈꾸는 자, 세종에게 배워라!

NeoTrois 2019. 4. 23. 15:47

<세종처럼>(2008)을 읽고 나면 작금의 정치 지도자들이 더욱 한심하게 느껴집니다. 존경할 만한 정치 지도자가 없는 현실 앞에서 세종은 대중이 원하는 긍정적인 리더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왜 세종인가?
한 나라가 번영하고 존속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지도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 없는 나라는 존재할 수 없듯이 뛰어난 지략과 통솔력을 가진 지도자라 할지라도 백성과 소통하지 못하면 그 나라의 존속은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도자가 어떻게 해야 백성을 잘 다스리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 오래토록 존속되게 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은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리더십을 기록한 책을 교본으로 삼기도 하고, 옛 선조들의 삶과 철학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동서양의 철학과 리더십을 대변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세종대왕’입니다.

조선 최고의 지식경영자 세종
세종대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철학을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로 꼽힙니다. 세종은 백성을 다스리는 입장에서, 내가 먼저 알아야 된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로 모든 지식을 다 축적해 자신의 양식으로 삼았습니다.

세종은 스스로 엄청난 분량의 공부를 했을 뿐만 아니라, 집현전과 경연을 통해 학문을 연구하고 습득한 지식을 신하들과 함께 나누고 소통했습니다. 많은 지식을 가졌으면서도, 또 한 나라의 임금이면서도 세종은 결코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지식이 많은 것을 무기 삼아 남을 폄하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소통을 통해 지식을 교류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축적되지 않고 소통되지 않는 지식, 확장되지 않는 지식은 단편으로만 끝나고 자신만의 만족에 그쳐버리게 될 텐데 세종은 이것을 현명하게 극복한 것입니다.

이처럼 ‘말’이나 ‘글’에서 그치지 않고 ‘일’을 이루어내는 것이 바로 세종의 ‘지적(知的)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임금인 세종이 백성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명(召命)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임금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세종은 하늘이 허락한 임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랐습니다.

세종은 ‘왕이 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임무는 무엇인가’를 늘 깊이 고민하였습니다. 많은 임금들이 백성을 위하는 위민,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정책을 펼쳤지만 세종대왕은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는 ‘소명의식’을 발휘했습니다.

소명(召命)의 리더십이란 바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라는 생각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애민, 위민은 임금 자신이 주체(주인)가 되어 내가 최고라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종은 백성들을 위해 하늘이 대신 자신을 심부름꾼으로 보냈다는 마음으로 백성들을 바라보고 다스렸던 것입니다.

세종은 그의 즉위교서에서 어짊을 베풀어 정치를 일으켜 세운다(施仁發政)고 밝혔습니다. 출산한 여자 종에게 100일간의 출산휴가를, 출산을 앞둔 여자종에게는 한 달간 휴가뿐만 아니라 그 남편인 남자종에게도 한 달간의 산후 휴가를 주었습니다. 

세종은 임금의 직책이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그의 소명의식을 노비들의 출산휴가제도에도 적용했던 것입니다.

전문가의 시대 : 장영실, 이천, 박연, 정초, 성삼문, 신숙주…
이러한 소명의식이 있었기에 백성과 소통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대화하고 소통함으로써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발명품이 세종의 시대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어떻게 하면 백성이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까’하는 생각, 즉 백성을 위하는 마음으로 고민한 결과가 창조(創造)의 리더십으로 발휘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훈민정음입니다. 그 외에도 세종기에 쏟아진 수많은 발명품들, 실용적 기구들, 실용서적들 - 의방유취, 농사직설, 삼강행실 같은 실용 매뉴얼들은 모두 창의경영의 성과들입니다. 

그런데 이 창조경영의 출발은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어진 마음’에서 출발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책임진 백성에게서 절박한 필요를 느낀다는 것은 어질지 못하거나 감수성이 없는 마음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대성(경기대학교 경영학부 부교수)은 그의 논문「세종대왕의 최고경영자 리더십과 지식경영」에서 도전정신, 지식의 공유정신, 신지식인 발굴과 인재존중정신, 집현전과 서운관을 통한 지식관리 및 창출 등에서 성공적인 지식경영자로서의 세종을 높게 평가하였습니다. 

결국 세종의 사람과 세상, 지식에 대한 열린 사고가 그의 창의경영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세종의 즉위 첫마디 “의논하자!"
세종은 그 스스로 수준 높은 학문을 갖추었고, 왕이 되기 전부터 부왕 태종이 ‘일의 대체를 안다’는 평가를 할 만큼 통찰력도 뛰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수많은 사안들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신하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의견을 채택해서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세종에게서 지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빠지기 쉬운 오만과 독선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소통의 적은 자신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는 데서 나옵니다. 그러나 세종의 소통은 전체의 지혜가 더 훌륭한 생각에서 나옵니다. 

세종의 경청능력은 아주 경이로운 수준이었습니다. 경청은 소통의 출발이 된다는 것을 세종은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세종은 세제개혁을 하기 위해 6개월 기간에 걸쳐 여론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당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합리적인 조세제도의 개혁이라는 연분9등-전분6등법은 세종의 소통(疏通)의 리더십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리나라의 군왕 중에서 세종처럼 여론조사를 통해 백성을 정치에 참여시키고, 신하들의 반대의견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정보를 수집했던 이는 없었습니다. 각자의 지식과 정보를 어떻게 엮어내고 마음을 모아내느냐는 소통에 달려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지적 리더십이 뛰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통보다는 현학을, 의논보다는 독단을 선호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세종은 마음을 열고, 생각을 나누고, 모두가 자기 일처럼 해내게 만드는 진정한 소통의 달인이었습니다.

금기를 넘어서는 군주 “그래 네 말이 옳다. 그러나…”
또한 세종은 자신이 한 번 생각하고 계획한 것은 놀라운 인내력으로 반드시 해내는 추진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많은 생각과 준비로 일을 추진하고, 그것이 결과로 나타날 때까지 여러 사람들과 협력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추진력(推進力) 또한 세종에게 배워야 할 리더십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추진력이란 각종 장애물과 소소한 민폐는 돌아보지 않고 돌파해 내는 저돌성을 우리는 떠올립니다. 그러나 세종은 느리더라도 끝내 해내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일관된 추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세종의 추진력이 돋보이는 점은 신하들의 반대를 극복해내는 설득과 타협, 소통을 통해 결국 신하들이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참여하게 만드는 포용적인 실천력이라는데 있습니다. 

세종대에 이루어진 성과들이 어느 하나라도 단기간에 쉬이 해치울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많은 것들을 이룬 배경에는 이러한 설득력과 실천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종은 중국과 유교적 세계관에 함몰된 사대부를 뒤로 하고 10여년간의 비밀 연구 끝에 훈민정음을 창제했습니다. 세종은 한글을 반포하고 난 이후에도 문자세계를 독점하려는 양반들과 오랜 문자논쟁을 하며 그들을 설득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을 자랑하게 되었고, 세계 언어학자로부터 가장 쉽고 뛰어난 세계 유일의 문자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의식이 풍족하면 백성들이 예의를 알게 되고 형벌에서 멀어진다.” <세종실록> 07/12/15
세종대왕이 이룬 업적을 보면 대부분이 백성에게 유익함을 주기 위한 것들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이 대신 맡긴 백성을 잘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늘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던 세종은 어떤 사안을 시작하거나 그 결과를 보고받을 때면 ‘이것이 백성에게 유용한가’를 항상 물었고, 어떤 것이 백성에게 어떠한 유익한지를 꼼꼼히 계산하고 거기에 맞춰 일을 해나갔습니다.

대왕 세종은 ‘지킬 수 없는 법은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실용적 법제정과 실행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의 실용주의는 인재쓰기에서도 드러납니다. 뇌물을 받거나 도덕적인 지탄을 받는 사람들도 그의 재능을 활용하기 위하여 임금이 방패막이가 되어 용서하고 등용하기도 했습니다. 

세종은 ‘법은 융통성과 원칙 중에서 어떤 한가지만을 고집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원칙론이 빠지기 쉬운 억울함을 실용의 차원에서 보완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농업에 있어서도 ‘늙은 농부’에게 세세한 영농방법을 물어서 그 요점을 모아 「농사직설」을 정초로 하여금 저술하게 하여 전국에 보급했습니다. 

그 스스로도 후원에 농사를 지어 그 씨앗을 전국에 유포하거나 농사 기법을 확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융통성과 과학적인 사고를 통해 세종은 다양한 분야에서 실용(實用)의 리더십을 드러내었습니다.

“내가 술을 마시면서 다른 사람이 술 마시는 것을 금하는 것이 옳겠는가.”<세종실록> 08/05/11
마지막으로 세종에게 배워야 할 리더십 중 하나이자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있으니 바로 수신(修身)의 리더십입니다. 

세종이 위에서 언급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고 절제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과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자신을 다스릴 줄 모른다면 다른 그 누구도 치리(治理)하거나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세종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절제와 인내가 몸에 밴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세종은 '자기 다스림'에 철저했습니다. 평생학습, 평생수양을 실천한 세종은 실용을 위한 학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하여야 할 것이 바로 마음을 공부하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경서와 사기는 보지 않은 것이 없고 또 지금은 늙어서 능히 기억하지 못하나 지금에도 오히려 글 읽는 것을 치우지 않는 것은 다만 글을 보는 동안에 생각이 일깨워져서 여러 가지로 정사에 시행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로써 본다면 글 읽는 것이 어찌 유익하지 않으랴’

마음 공부를 무엇보다 중요시한 세종은 당시 젊은 사대부들에게 ‘어떻게 하면 선비들의 부화한 버릇을 버리게 할 수 있을까’를 종종 물었습니다. 

또한 세종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었습니다. 제 아무리 신하들이 왕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말을 하더라도 일단 “네 말이 아름답다”거나, “그 뜻이 좋다”라는 식으로 경청하고 수긍한 후, 자신의 주장을 펼치곤 했습니다.

상노(上怒)와 상대노(上大怒)라는 단어를 조선왕조실록에서 검색해보면, 세종 때는 각각 16회와 3회로 확인되는 반면 태종대는 각각 94회 와 3회, 영조대가 각각 135회와 16회로 대조적인데서도 세종이 얼마나 절제했는지를 잘 수 있습니다. 

화를 내는 경우도 사신의 접대문제나 여진족의 변경침입과 같은 공적인 문제에 국한된 경우가 많았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세종은 마음 경영을 누구보다 잘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을 맺으며
역사상 가장 뛰어난 대왕,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임금 세종대왕. 세계 최고의 리더십은 이렇게 우리들 삶 속을 지금도 관통하고 있습니다. 

<세종, 그가 바로 조선이다>를 쓴 이한우는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공간과 21세기 초라는 시대가 세종형(形)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그의 책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지금 이렇다 할 지도자를 발견하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하는 지도자통(痛)을 앓고 있습니다. 현실 정치에서 흙탕물을 덮어쓴 정치 지도자를 보면서 실망과 좌절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의 박영규는 “세종 리더십의 교훈은 충분히 지도자 공부가 된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지도자는 모름지기 정치철학과 가치관은 물론 문화적 교양도 함께 지녀야만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월간 전경련(538호)에 게재된 '불황을 이기는 세종 리더십'에서도 어려운 시대의 불황 극복 해법을 세종의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명령만 내리는 지도자가 아니라 국가 대소사에 솔선수범은 물론이고, 군주로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을 물리치고 헌신적으로 정사(政事)에 매진한 지도자였다는 것입니다.

세종의 ‘소통에 기반을 둔 헌신의 리더십이야말로 당대의 법과 제도, 과학과 문물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대 발전을 가능케 한 핵심적인 성공요소였던 것입니다.

<세종처럼>의 저자 박현모는 자신의 책이 많은 국민들이 ‘세종 이야기’를 주고 받아, 세종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는 데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고 하였습니다다. 

누군가 우리에게 “정치를,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종처럼 하십시오.”

대한민국 국회에 세종같은 인물이 딱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